[IT동아 정연호 기자] 흉악범죄자들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범죄자의 인권이 필요한가?’는 뜨겁게 떠오르는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 문제에서 살짝 빗겨 나가서 ‘당위성’의 문제를 논하는 대신,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문제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욕해도 되는 걸까요? 윤리적인 문제를 논하는 게 아닙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범죄자에게 대중이 비난을 해도 법적인 문제가 없을까요? abeOOO님의 사연을 들어보겠습니다(일부내용 편집).
최근 인터넷에서 ‘각도기 잘 재라’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흉악범죄자의 기사를 보더라도 댓글의 수위를 조절하라는 건데요. 잘못하면 고소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인터넷에서 범죄자에게 댓글을 달더라도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수 있다는데 정말인가요?
출처=엔바토엘리먼트
안녕하세요, IT동아입니다. abeOOO님께서 중요한 내용을 짚어주셨습니다. 범죄자의 모욕죄와 관련된 쟁점은 여러 변호사가 주의를 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변호사들은 “범죄자가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를 욕할 때 모욕죄로 처벌을 받지 않는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모욕죄는 욕설이나 비속어, 성희롱 등의 경멸적 표현으로 상대방에게 수치를 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때, 가해자의 표현에 구체적인 사실이 적시되지 않아도 성립이 가능하며, 상대방을 비방할 목적이 없었어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습니다.
명예훼손죄는 모욕죄와 다릅니다. 단순 의견이면 모욕죄, 구체적 사실이 들어가면 명예훼손죄에 해당합니다.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에서 공공연하게 사실 혹은 허위의 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면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습니다. 사실 적시 사이버 명예훼손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허위사실로 명예훼손을 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합니다. 모욕행위와 명예훼손 행위가 동시에 발생하면 모욕죄는 명예훼손죄에 흡수돼 명예훼손죄만 성립합니다.
유튜브 채널 ‘로퀘스트’의 영상 ‘흉악범죄자에게 욕을 했을 때 모욕죄가 성립될까?’에서 김지혜 변호사는 “(흉악범죄자에게 비난의 댓글을 달아도) 모욕죄가 당연히 성립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는 “모욕죄는 친고죄(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 성립하는 범죄)에 해당한다”면서 범죄자도 본인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댓글을 고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상에서 박지훈 변호사는 “대부분 그런 흉악범들은 자신들에 대한 악플을 고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두 변호사는 “범죄자도 헌법상의 명예권과 인격권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면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아동 성범죄자와 연쇄살인마와 같은 흉악범죄자도 욕설과 비속어로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모욕죄의 성립 요건은 무엇일까요? 공연성, 특정성, 그리고 모욕의 성립 여부입니다. 공연성이란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외에도 제3자가 현장을 목격해야 한다는 뜻이죠.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단다면 불특정 다수가 이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기사 댓글에서 범죄인에게 모욕을 한다면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죠. SNS로 일대일 채팅을 했더라도 이 내용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파됐거나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이 성립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정성이란 ‘누구에게 욕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된 기사에서 욕을 한다면 특정성이 성립할 수 있겠죠. 신상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특정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뉴로이어 법률사무소의 김수열 변호사는 로톡가이드에서 “N번방 관련자를 저격하는 글에 댓글로 같이 욕설을 한 경우, 해당 글에 상대방 신상정보가 중간중간 블라인드 되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정보를 알 수 있다면 특정성이 인정된다”면서 특정성은 사안에 따라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모욕죄 성립 요건은 사안에 따라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출처=엔바토엘리먼트
한 법률 전문가는 “모욕죄의 특정성은 일반화해서 성립 요건을 말하기 어렵다. 사건마다 법률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기사나 인터넷 게시글마다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정도가 다르니, 댓글을 달 때는 모욕적인 표현을 쓰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특정성이 성립하려면) 사람의 성명이 명시되지 않고 머리글자나 이니셜만 사용한 경우라도 그 표현의 내용을 주위 사정과 종합해서 볼 때, 피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모욕적인 표현을 할 때 이름을 밝히지 않더라도 주위 사정을 종합해서 볼 때 특정성을 인정할 수 있는 거죠.
욕설은 대표적인 모욕의 사례입니다. 욕을 한글 초성으로 표현해도 사회 통념상 누구나 욕설로 인지할 만하면 욕설로 인정됩니다. 욕설이 아니어도 경멸적인 감정이 드러난다면 모욕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A표현에 대해 주관적으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해서 성립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칭찬을 했을 때 모욕감을 느끼더라도, 사회 통념상으로는 욕설이나 모욕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법원은 “나이 X 먹은 게 무슨 자량이냐”라는 표현도 사회적 평가를 저해할 모욕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모가 그런 식이니 자식도 그런 것이다”라는 표현도 기분이 다소 상할 수는 있지만 모욕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이 막연해 상대방의 명예감정을 해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익 목적으로 작성된 글이나 댓글이라면 처벌을 받지 않을까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명예훼손죄는 적시된 내용이 사실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작성된다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욕죄는 다릅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공익적인 의도로 글이나 댓글을 달아도, 욕설이나 경멸적 표현이 들어가면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신 다소 격한 표현이 들어갔어도 사회 상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면 모욕죄의 성립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나잇값 못하는 망나니’,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만 먹은 아귀들’, ‘뇌와 귀없이 입만으로 토론한다’와 같은 표현은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가평 계곡 살인사건 피의자 중 한 명이 누리꾼들의 모욕글을 명예훼손 혹은 모욕죄로 고소했습니다. 범죄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분노를 느끼게 되는 감정은 누구나 겪어 봤을 겁니다. 다만, 변호사들은 “그런 분노를 절제하면서,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게끔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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