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목 받는 해외 현대 미술가 소개에 이어,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의 인기 현대 미술 작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배 ▲이우환 ▲하종현 ▲이건용 ▲김선우 ▲우국원 작가를 소개합니다.
이배, 이건용 작가는 비교적 작품 활동을 오래 해 온, 이미 국내에서 입지를 굳힌 중견 작가로 최근 재조명 받고 있습니다. 이우환 작가는 우리나라 현대 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장입니다. 하종현 작가 역시 우리나라 미술 역사에 굵은 발자욱을 남긴 작가입니다. 김선우, 우국원 작가는 2021년 미술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주목 받은, 특히 MZ세대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입니다.
이배 작가
이배 작가는 ‘숯의 작가’라고도 불립니다. 작품 활동을 하려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프랑스 파리로 떠난 이후, 그는 줄곧 숯을 써서 작업했습니다. 파리에 정착한 이방인 무명 화가에게 숯은 쓰기 부담 없는, 가격이 싼 재료였습니다. 손가락 크기 튜브 물감 하나를 사려면 한화로 약 2만 원을 써야 했지만, 숯은 한 포대에 한화로 몇천 원 정도였으니 재료 걱정 없이 작업을 할 수 있었지요.
숯은 이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자입니다. 이배 작가는 가격이 싸고 물성도 연약하지만, 풍성하고 화려한 것을 끄집어내는 역동성을 가진 숯을 써서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자연을 예술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숯을 캔버스에 접합하거나, 숯가루를 이용해 서예를 하듯 붓질을 하거나, 대형 숯을 전시장에 설치하는 작업을 하지요. 그의 유명한 작품 시리즈 ‘Issu du Feu(불로부터)’, ‘Brushstroke(붓질)’은 국내 주요 경매에 빠지지 않고 매번 등장해 작가의 인기를 대변합니다.
이배 작가의 작품(왼쪽). 출처 = 테사
이배 작가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이 출근과 퇴근 시간을 지킵니다. 보통 아침 9시경 작업을 시작해서 저녁 7시에는 마친다고 합니다. 그에게 규칙적인 일상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에게 현대 미술이란 ‘산업사회의 어떤 정신으로 만들어진 예술’입니다. 영감이 떠오르든 떠오르지 않든, 매일 같은 시간에 작업하는 그의 방식은 예술 작품의 질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동시에 소비자들이 어떤 작품에서든 이배 작가의 개성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이배 작가는 2000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2018년에는 프랑스 ‘문화예술 훈장 기사장’마저 거머쥔, 화단에서 인정받는 작가입니다. 최근에는 프리즈 서울의 공식 협력사 생 로랑과 협업해 새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합니다.
이우환 작가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작가 등과 함께 단색화 1세대로 불리는, 2010년대 단색화 열풍을 일으킨 이우환 작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 받는 작가입니다.
이우환 작가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일본에서 1960년대 '모노하(物派)'라고 불리는 전위미술 운동을 이끌며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어로 ‘모노(物)’는 물건을 뜻합니다. 모노하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 실제 사물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물들의 조화와 관계 또는 사물과 시공간의 관계를 주목하려는 운동입니다. 그의 '관계항' 시리즈를 보면 모노하 정신이 잘 드러나지요.
이우환 작가의 작품(오른쪽). 출처 = 테사
그는 1970년대에 평면 작업인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시리즈로 시작, 1980년대에는 '바람으로부터'를,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조응', '대화' 시리즈로 작업을 이어 나가며 점, 선, 여백의 관계에 집중했습니다. 이우환 작가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시리즈에서 붓에 묻힌 물감이 옅어질 때까지 반복해서 캔버스에 점과 선을 그려 나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조응', '대화' 시리즈는 좀 더 여백과 점의 관계성에 집중한 작업으로, 점의 존재감 또한 이전보다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철학과 깊은 고찰을 바탕을 기반으로 한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도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으며, 거래액과 거래 작품 수 면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한국 미술시장 정보시스템(K-artmarket)의 ‘2022년 상반기 한국 미술시장 결산’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낙찰총액과 낙찰작품 수 순위에서 이우환 작가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외 미술계와 미술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친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경매회사의 프리뷰 전시나 갤러리 등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특히 일본, 프랑스에 있는 이우환미술관 또는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에서 더욱 많은 작품을 감상 가능합니다.
하종현 작가
하종현 작가는 우리나라 추상 미술, 그 가운데 차세대 단색화 부문을 이끌어 온 거목입니다. ‘접합’이라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도 유명한데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를 대체할 마대 뒤에 물감을 바른 뒤 이를 눌러 앞으로 배어나오게끔 합니다.
‘배압법’이라고도 하는 이 기법은 마대 위에 불확실과 자유분방한 무늬를 나타냅니다. 여기에 그는 물감을 쓸어내리거나 긁는 방식으로 물성을 강조합니다. 즉, 창작 과정에서 전통과 규약을 벗어나서 물질과 대화하는 셈이지요. 하종현 작가는 이전에는 무채색 물감을 주로 썼으나, 2010년 이후부터는 색이 강렬한 물감을 쓰며 새로운 접합의 세계에 눈을 뜹니다.
이 기법을 활용해 만든 하종현 작가의 작품은 1960년부터 세계 주요 미술 전시회에서 좋은 반응을 이끕니다. 미국, 프랑스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개인전을 지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 교수와 학장,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역임하며 후학을 기르고 미술 시대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이건용 작가
1970년대 행위예술의 선두주자이자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건용 작가는 나이 팔순에 이른 지금까지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합니다.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요, 특히 1976년부터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신체드로잉(Bodyscape)’ 연작은 ‘하트 그림’ 혹은 ‘날개 그림’으로도 불립니다.
그는 화면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생각이나 감정을 손으로 그려내는 기존의 회화 방법을 버리고, ‘그리는’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신체 드로잉 연작이에요. 그는 신체드로잉 연작에서 자신의 키, 양팔과 다리 길이 등에 따라 손끝이 닿는 범위까지 선을 그으며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가는 ‘과정’을 화면에 드러냅니다.
캔버스를 등지고서 붓질을 하기도 하고, 캔버스 뒤에서 팔을 뻗어 손이 닿는 만큼 선을 긋기도 하지요. 하트 모양을 그린 것처럼 보이는 드로잉 작품은, 붓을 들고 캔버스를 자신의 옆에 둔 채로 팔을 최대한 둥글게 굴려 궤적을 그린 결과입니다. 캔버스 위에 풍경을 묘사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필연적인 논리에 의해서 서술되는 현상을 기록하는 것이지요.
이건용 작가의 작품과 하종현 작가의 작품(왼쪽부터). 출처 = 테사
그 기록의 결과는 회화로 나타나지만, 기록하는 과정 또한 하나의 행위 예술이 됩니다. 이건용 작가는 이렇게 자신의 작업을 통해 사람의 ‘신체’와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장소’, 그리고 관람자들과의 ‘관계’를 탐구했습니다.
이건용 작가는 197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이어온 중견 이상급의 작가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 미술계에서 상업적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2021년 9월 갤러리 현대에서 연 개인전에 전시한 작품은 완판됐고, 2022년에는 세계가 인정하는 갤러리 중 하나인 ‘페이스’가 이건용 작가와 세계 전속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2023년에는 뉴욕 구겐하임에서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 전시가 열려 그의 주요 작품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김선우 작가
김선우 작가는 2020년~2021년, 미술 시장이 급격히 커질 무렵 혜성처럼 떠오른 작가입니다. 이 시기 경매나 아트페어에서든 ‘도도새’ 작품을 본 소비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조화롭고 생기 넘치는 색채, 똘망똘망한 눈, 큰 부리를 가진 귀여운 도도새들이 열대우림에서 뛰어놀거나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그린 도도새 작품이 바로 김선우 작가의 작품입니다.
김선우 작가의 작품은 특히 새로운 예술 작품 구매층으로 떠오른 MZ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1988년생으로 MZ세대와 문화적 공감대가 있는 작가라는 점 또한 인기에 한 몫 했지요. 실제로 김선우 작가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자신을 응원하고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과 적극 소통합니다.
2021년 한 경매를 거치고 그의 인기는 더욱 커집니다. 2019년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약 3만 5,000 홍콩 달러(약 540만 원)에 팔렸던 작품 ‘A Sunday on La Mauritius’가 2021년 9월 서울옥션 경매에 다시 나왔는데요, 가격이 무려 20배 오른 1억 15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그가 도도새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을지재단 일현미술관 지원으로 인도양 모리셔스 섬을 다녀온 뒤였습니다. 모리셔스 섬에 서식하던 도도새는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됐고, 사람들이 섬에 왔을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아 ‘도도(바보)’로 불리다 잡아 먹혔지요. 결국 1681년 멸종됐습니다.
김선우 작가는 "현대인이 낙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안주하는 동안, 스스로 자유라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씩 뽑아내는 모습이 도도새와 닮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도도새’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젊은 소비자와 수집가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김선우 작가. 예술 시장에 처음 진입한 작가의 작품 가격이 20배 이상 치솟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가 국내외에서 인정 받고, 탄탄한 입지와 작품 세계를 만드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을지 눈여겨봐야 하겠습니다.
우국원 작가
김선우 작가와 함께 최근 떠오른 인기 작가로는 우국원 작가가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전시뿐만 아니라 경매에서도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경매에 출품된 그의 작품 64점이 전부 낙찰돼 약 48억 원의 낙찰 총액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 5월 27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그의 작품 ‘Que SeraSera’가 수수료 포함 189만 홍콩 달러(약 3억 원)에 낙찰되며 작가의 최고가 기록을 세웠지요. 2019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그의 작품 ‘Matthew the Evangelist’가 5만 5,000 홍콩 달러(약 870만 원)에 팔린 것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가격 상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경매에서는 ‘Ugly Duckling’이 2021년 9월, 케이옥션 대구 경매에서 2억 3,000만원에 낙찰되면서 최고가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의 작품은 특히 어린 수집가에게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 솔직하고 원초적인 감정과 다양한 경험을 귀여운 캐릭터로 표현한 동화적인 구성, 이와 잘 어울리는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표현 기법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이와 동물들은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항상 그림과 함께 문구가 들어갑니다. 우국원 작가는 문구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흘려 씁니다. 이는 그가 전체 레이아웃 균형을 맞추려 고른 수단입니다. 그래서 우국원 작가는 ‘작품을 조형적 역할로만 봐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바깥으로 표출하면서 자란 스타일이 아니라서 한 번 꼬아서 표현한다"고 말했는데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람자가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놓습니다.
글 / 아트파이낸스그룹 류지예 팀장
아트파이낸스그룹은 뉴노멀 시대를 맞아 금융의 영역을 예술 산업으로 넓혀 신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위험 대비 수익을 제공할 투자처를 발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동아시아예술문화연구소와 예술금융 교육, 다양한 세미나도 엽니다. 주 업무는 예술품 거래 데이터 분석, 예술 부문 비즈니스 컨설팅 및 연구이며 아트 펀드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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