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권택경 기자]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인수 초기 대규모 구조조정, 정지 계정 복구 등에 이어 최근 언론인 계정 정지, 경쟁사 링크 차단 등 조치로 잇따라 구설에 오르면서다. 결국 유럽 규제당국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직접 압박에 나섰다. 비판이 이어지자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 대표 사임 여부를 투표에 붙혔다.
머스크는 19일 개인 트위터에서 “내가 트위터 대표직에서 내려와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찬반 투표를 개시했다. 그는 “이번 투표 결과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19일 오후 8시 기준, 과반이 넘는 인원이 머스크 사임에 찬성 중이다. 이번 투표는 최근 트위터 운영 방침을 놓고 잇따른 논란이 불거진 직후 벌어졌다.
출처=일론 머스크 트위터 캡처
가장 논란이 된 대목은 언론인 계정을 무더기 정지한 부분이다. 트위터는 지난 14일 무렵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CNN 등 미국 내 유력 매체 기자들의 계정을 일제히 정지했다. 이들은 모두 트위터 관련 소식을 보도한 기자들이었으며, 일부는 머스크의 트위터 운영 방침에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가 문제로 삼은 건 이들이 기사에 자신의 전용기를 추적하는 계정과 관련된 기사를 썼다는 점이다. ‘일론젯’으로 알려진 이 계정은 미 연방법에 의해 공개되는 실시간 항공기 비행 데이터인 ADS-B를 이용해 일론 머스크의 전용기 동선을 추적해 게시하는 계정이다. 잭 스위니라는 미국 대학생이 운영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 전부터 스위니에게 5천 달러(약 650만 원)를 대가로 계정 삭제를 요구할 정도로 이 계정을 눈엣가시로 여겨왔다. 트위터 인수 후인 지난 11월에는 일론젯이 자신의 신상에 위협이 된다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위해 계정을 차단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머스크가 마음을 바꾼 명분으로 내세운 건 ‘스토킹 피해’다. 머스크는 지난 14일 미국 LA에서 아들이 탄 차량이 스토커에게 위협받는 일이 있었다며 그 책임을 스위니와 그의 일론젯 계정에 돌렸다. 스토커들에게 자신과 가족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특정 개인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게시하는 건 ‘암살 좌표’를 찍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트위터 정책에도 머스크의 입장이 반영돼 실시간 위치 정보를 게재하는 행위를 계정 정지 사유로 추가했다. 계정이 정지된 기자들도 일론젯 계정을 언급하거나 관련 링크를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이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됐다. 같은 이유로 스위니의 개인 계정, 최근 트위터의 대안으로 주목받은 마스토돈의 트위터 공식 계정 또한 정지됐다.
출처=셔터스톡
머스크는 트위터 실시간 음성 대화방인 스페이스에 직접 등장해 기자들과 이번 사태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자신은 일론젯 계정에 관한 기사를 쓰며 링크를 남겼을 뿐이라는 기자의 항변에 머스크는 “그게 그거다”라고 응수했다.
머스크와 트위터의 이같은 조치에 각계에서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자의적 조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사무총장은 트위터에 “언론 자유는 장난감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이자 유해한 허위 정보에 맞서 싸우는 핵심 도구”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베라 요우로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EU의 디지털 서비스법(DSA)은 언론 자유와 기본권 존중을 요구한다”면서 ‘선을 넘으면 제재당할 것’이라는 경고장을 날렸다. EU DSA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유해 콘텐츠 관리, 투명한 운영 방침 등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법안이다.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되며, 위반이 반복될 경우 EU 내 퇴출까지 이뤄진다.
결국 머스크는 지난 16일 정지 계정 복원 여부를 자신의 개인 트위터에서 투표에 부쳤다. 그 결과 즉시 정지를 해제해야 한다는 문항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이에 따라 대부분의 정지 계정이 복원됐다. 쏟아지는 비판에 한발 물러난 셈이다.
머스크 인수 후 트위터가 오락가락 정책을 펼치며 논란에 휩싸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머스크는 인수 초기 콘텐츠 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중요한 정책적 결정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뒤집고 지난달 개인 트위터 투표 결과에 따라 폭력 조장으로 정지됐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계정을 복구한 바 있다.
출처=셔터스톡
이번 사태 여파가 채가시기도 전인 지난 18일에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경쟁 소셜 미디어 플랫폼 링크 게재를 금지하는 정책을 내세우며 새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 정책은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결국 하루도 못 버티고 폐기됐다. 머스크는 “앞으로 중요한 정책 변경 전에는 투표가 있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머스크의 ‘사임 투표’ 트윗도 이 사과 트윗 직후 올라왔다.
이번에 계정이 정지됐다 복구된 독립 언론인 애런 루파는 미국 NPR과 인터뷰에서 “이번 일은 트위터가 더 이상 규칙 기반 회사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며 “기본적으로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의 변덕에 기반한 회사이며, 이용 약관은 그날그날 머스크의 기분에 좌우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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