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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거론되는 美 가스레인지, 국내 실정과 큰 관련 없어

IT동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2.23 10:35:38
조회 2546 추천 14 댓글 20
[IT동아 남시현 기자] 오늘날 조리용 열원은 가스레인지와 하이라이트, 그리고 인덕션으로 나뉜다. 하이라이트는 전기를 열에너지로 전환해 요리기구를 데우는 방식이며, 인덕션레인지는 유도가열 원리를 활용해 금속 재질의 요리기구가 자체적으로 열을 내도록 한다. 하이라이트의 경우 열원 자체가 뜨거워지는 방식이고, 인덕션레인지는 동작 중에도 바닥이 뜨거워지지 않는 등의 장점이 있어서 가스레인지를 대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스레인지는 여전히 유효하며 널리 쓰이는 열원이다. 대다수 레시피가 가스레인지의 열 조절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데다가, 도시가스를 활용하므로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이 적다.

가스레인지 퇴출 나선 美··· 잘 쓰다가 왜?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가스레인지 퇴출 움직임이 불고 있다. 가스레인지나 가스오븐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에 위험을 주는 것은 물론, 실내에 1급 발암물질인 벤젠 농도를 높여 암을 유발한다는 게 이유다. 지난해 10월, 비영리 에너지과학 및 정책 연구기관인 PSE 헬시 에너지가 캘리포니아 주 전역의 주방 185곳에서 수집한 가스 샘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열 가지 오염물질 중 여섯 가지가 연방 지정 대기 오염 물질로 나타났다. 특히 특정 지역에서는 주 전체 평균보다 30배 높은 66ppmv의 벤젠이 검출되었고, 가스레인지가 꺼진 조건에서도 캘리포니아 주의 권장 노출 한도의 7배에 달하는 벤젠이 생성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출처=셔터스톡



이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가스레인지의 유해성 논란이 확산하기 시작했고, 미국 내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안전 규정을 담당하는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1월 블룸버그 통신과 CPSC 소속 리처드 트럼카 주니어(Richard Trumka Jr.) 위원이 가스레인지를 주제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트럼카 위원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해로운 것으로 밝혀진 가전제품을 규제하기 위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직후 CPSC가 공식적으로 가스레인지를 금지하려는 것은 아니고, CPSC가 강제할 권한도 없다는 뜻을 밝혔지만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민주당은 가스레인지 퇴출이 국민보건 증진과 기후변화 대응, 탄소중립 이행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과제라고 판단하고 ‘물가상승감소법(Inflation Reduction Act)’에 가스레인지를 전기레인지로 교체하면 840달러를 환급해주는 방안을 추가해 가스레인지 변경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탄소중립에 반하는 에너지 기업들을 압박하는 건 덤이다. 이에 에너지 업계와 밀월을 맺어온 공화당은 ‘가스레인지 보호 및 자유법(Gas Stove Protection and Freedom Act)’까지 도입하며 가스레인지 퇴출 반대에 나섰다. 가스레인지가 실제로 퇴출될지는 현재진행형이다.

논란된 미국 가스레인지, 한국과 관련 없어


미 에너지 정보국이 미국 내 가정 1만8500곳을 대상으로 사용한 스토브 유형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체의 전기 레인지 사용 비율은 68%이며, 가스레인지는 38%로 나타났다. 합계가 100%을 넘는 이유는 주방용 가스레인지 이외에도 가스 오븐 등이 중복 집계됐기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 노스다코타 주는 약 90%가 전기레인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캘리포니아와 뉴저지는 여전히 약 70%가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전체 표본 중 전기레인지보다 가스레인지를 더 많이 쓰는 주는 캘리포니아, 네바다, 일리노이, 뉴욕, 뉴저지밖에 없어서 교체에는 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파일럿 라이트로 점화하는 가스레인지는 내부에 항상 불이 켜진 상태를 유지한다. 출처=Chelsea Company 유튜브



하지만 미국 내에서 가스레인지가 퇴출 대상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염려할 필요는 적다. 미국 내 가스레인지, 가스 오븐, 가스식 보일러가 모두 문제가 되는 건 아니고, 이중 ‘파일럿 라이트(Pilot Light)’라는 구식 장치를 가진 제품들이 대상이다. 파일럿 라이트는 1922년 개발된 기술로, 불을 점화할 때 스파크가 아니라 항상 켜져 있는 작은 가스불을 사용한다. 스파크가 등장하기 전에 사용되던 기술이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파일럿 라이트가 적용된 제품을 쓰는 가정이 있다.

문제는 파일럿 라이트가 24시간 내내 내부에서 가스불을 켜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가스가 조금씩 유출된다. 행여 불이 꺼진 상태라면 연소되지 않은 가스가 계속 새어 나와 실내 유해가스 농도를 높인다. 모든 미국 내 가스레인지가 파일럿 라이트 방식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파일럿 라이트 방식의 가스레인지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경동나비엔 CNB350-03BS의 점화 플러그, 국내에 출시된 가스레인지는 다 이 제품처럼 스파크를 활용한다. 출처=경동나비엔



반대로 우리나라 가스레인지는 스파크를 사용한다. 가스레인지가 도입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기 제품도 파일럿 라이트가 아니라 점화 순간에 스파크를 튀기는 압전 점화기가 사용됐다. 이 방식은 건전지나 전원이 필요 없는 대신 불이 붙을 때까지 계속 스파크를 튀겨야 해서 그 사이에 가스가 유출될 순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건전지로 스파크를 튀겨 불을 켜는 방식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220V를 연결해 가스가 공급만 되면 바로 스파크를 튀겨 불을 켜는 방식이 대중화됐다.

우리나라에 가스레인지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가스레인지가 스파크로 점화하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가스를 유출하는 파일럿 라이트로 인한 우려를 대입할 필요는 없다. 또한 도시가스사업법에 의해 가스 점검이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점도 안전성을 더한다.

미국 가스레인지 논쟁은 정치적 이슈



CPSC의 알렉산더 혼-사릭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가스레인지를 금지하려는 뜻이 아니라고 밝혔다. 결국 정치권의 행보에 따라 가스레인지 퇴출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출처=CPSC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에서 가스레인지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인덕션이나 하이라이트와 다르게 가스레인지라는 방식 자체가 유해 가스를 발생할 여지는 있지만, 파일럿 라이트 방식처럼 24시간 켜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정기 점검도 이뤄지므로 우려할 필요는 없다.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공동주택 환기설비 매뉴얼’에서는 10분 간 자연환기 할 시 실내 오염물질 수치도 60% 가까이 줄어든다고 돼있으니 조리 이후 환기만 해도 충분하다.

미국발 가스레인지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3년 미국의회는 실내 공기질 청문회를 열어 가스레인지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고, 이번처럼 CPSC와 환경보호국(EPA)이 나서 가스레인지의 유해성을 조사했다. 하지만 에너지 기업들이 가스레인지로 인한 건강상의 위협이 결정적이지 않다는 보고서에 힘을 실어 없던 일로 지나갔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논쟁이 재점화된 것이다. 특히 4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에너지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적 행보가 포석으로 깔려있다. 따라서 미국의 가스레인지 논쟁은 다소 정치적인 결정임을 알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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