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권택경 기자] 워들이라는 낱말 맞추기 게임이 있다. 알파벳 5글자 영어 단어를 추리하는 간단한 게임이다. 조쉬 워들이라는 개발자가 아내를 위해 만든 이 게임을 뉴욕타임스는 거액에 인수했다. 정확한 인수액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최소 100만 달러(약 13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사인 뉴욕타임스가 단순한 낱말 게임 서비스 권리를 거액에 사들인 건 일견 뜻밖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다르다. 십자말 풀이를 비롯한 퍼즐 게임은 천 만을 넘나드는 유료 구독자를 지닌 뉴욕타임스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다. 기사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낱말풀이를 즐기려 뉴욕타임스를 구독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낱말풀이만을 위한 전용 구독제에 따로 가입한 사람만 해도 지난 2019년 기준으로 50만 명을 넘었다.
우리는 흔히 콘텐츠라고 하면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나 웹툰, 소설, 화려한 그래픽을 지닌 게임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아주 단순한 퀴즈나 낱말풀이와 같은 퍼즐도 충분히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누구나 퀴즈를 내고, 풀 수 있는 플랫폼 ‘퀴즈톡’을 운영하는 큐버스랩의 전창섭 대표도 퀴즈와 같이 일견 단순해 보이는 퀴즈 콘텐츠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큐버스랩 전창섭 대표
“퀴즈도 돈이 되는 콘텐츠입니다”
아이디어는 아이들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에서 출발했다. 자녀를 둔 부모들 입장에서 스마트폰은 계륵 같은 존재다. 손에 쥐여주자니 악영향이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아예 못 보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창섭 대표는 “어차피 스마트폰을 본다면, 그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자는 생각에서 학습에 도움이 되는 퀴즈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퀴즈톡에는 현재 170만 개에 달하는 퀴즈 콘텐츠가 등록되어 있다. 상식 퀴즈나 외국어 퀴즈부터 아이돌 덕력 테스트와 같은 관심사와 취향에 기반한 심심풀이 퀴즈까지 다양한 유형의 퀴즈가 존재한다. 큐버스랩이 직접 만든 콘텐츠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용자들이 직접 만든 퀴즈들이다. 서비스 초창기만 해도 모든 콘텐츠를 큐버스랩이 제작했지만, 금방 한계에 봉착했다. 고민 끝에 누구나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오픈 플랫폼으로 전환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큐버스랩 전창섭 대표가 퀴즈톡 앱을 실행 중인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렇게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퀴즈를 만들고, 푸는 생태계를 이끄는 원동력은 블록체인이다. 퀴즈를 낸 사람과 푼 사람 모두에게 큐포인트라는 보상을 지급하며, 이를 코인으로 환전할 수 있다. 퀴즈톡의 코인은 현재 업비트, 빗썸, 코인원 등 국내 대표 거래소와 해외 거래소인 게이트아이오(Gate.io)에 상장되어 있다. 퀴즈를 내고, 풀면서 소소하게나마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블록체인은 단순히 보상 체계에만 활용되는 게 아니라 퀴즈 풀이 내역과 콘텐츠 저작권, 수익 계약 관리 등에도 활용된다.
보상 지급을 위한 수익원은 퀴즈와 함께 송출되는 광고에서 마련된다. 이를 위해 큐버스랩은 퀴즈톡의 퀴즈 콘텐츠가 어떤 채널에서든 항상 퀴즈 하나당 광고 하나와 함께 송출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마련했으며 이를 국내와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 특허로 등록했다. 또한 광고주들이 광고대행사 도움 없이도 코인을 이용해 쉽고 간편하게 광고를 올릴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해서 운영 중이다.
출처=퀴즈톡 홈페이지
큐버스랩은 데이터 분석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퀴즈톡에는 방대한 퀴즈 콘텐츠가 있는 만큼, 그 수준이나 분야도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퀴즈를 선별해서 노출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 분석이 필수적이다. 전 대표는 “단순 숫자 덧셈 같은 퀴즈는 어른이 보기엔 시시하고 수준 낮지만, 아이들에겐 가치 있는 퀴즈”라며 “현재 빅데이터 분석으로 이용자별 맞춤 콘텐츠가 표시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큐버스랩은 데이터 분석 전담 연구실을 3년간 운영 중이며, 대학들과도 협약을 맺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서버도 12대나 가동 중이다. 이렇게 공들여 분석한 데이터를 콘텐츠 큐레이션만 활용하는 건 아니다. 이용자 성향, 관심사 등에 따라 맞춤형 퀴즈 콘텐츠를 표시하는 것과 반대로, 이용자가 어떤 퀴즈 콘텐츠를 즐겼는지를 통해 그 이용자 성향, 관심사를 파악할 수도 있다. 큐버스랩은 이를 데이터 활용이 중요한 보험사와 같은 기업 고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B2B 사업 모델 또한 구상하고 있다.
“미국 시장 교두보로 삼아 글로벌 서비스로 도약할 것”
석유화학 분석 엔지니어 출신인 전창섭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이기 이전에 연 매출 150억 수준의 중소기업을 일군 사업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경기도 우수 중소기업으로 선정된 온라인 석유화학 분석 SI 업체인 지퓨텍이 바로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다. 안정적인 사업체를 지닌 전 대표가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진 건 현실에 안주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보기에 제조업 기반 업체는 성장성에 한계가 있고, 경기 영향도 크게 받았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분야의 사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IT 분야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퀴즈톡 전창섭 대표
큐버스랩은 필리핀, 일본에 이어 현재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어차피 도전한다면 가장 큰 시장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잔뼈 굵은 사업가인 전 대표에게도 미국 시장 진출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때 손을 내민 게 서울창업허브다. 전 대표는 “이전까지는 중동이나 동남아 시장 경험만 있어서 미국 시장은 처음이라 막막했는데, 서울창업허브가 많은 도움이 됐다. 비용 지원도 지원이지만 현지 네트워크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었던 점이 특히 큰 힘이 됐다”면서 “만약 서울창업허브 도움이 없었다면 시행착오로 인해 훨씬 더 큰 비용이 치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판 퀴즈톡 앱을 실행 중인 모습. 현지에 맞게 콘텐츠와 UI·UX를 최적화했다. 제공=큐버스랩
서울창업허브의 글로벌 진출 프로그램 지원을 받은 큐버스랩은 미국 시애틀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PoC를 진행하며 본격적인 미국 서비스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테스트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퀴즈 콘텐츠와 이용자 인터페이스(UI)·이용자 경험(UX)를 현지화한 데 이어 광고주도 이미 두 개 확보했다.
전 대표는 “이번 PoC 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출시한 후 향후에는 유럽, 동남아 등으로 확장하며 글로벌 서비스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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