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남시현 기자] 그간 반도체 업계의 성장세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따랐다. 무어의 법칙은 1965년 인텔의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창한 법칙으로, 2년마다 반도체 집적회로에 탑재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숫자가 두배씩 증가한다는 관측이다. 현재는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고, 가격은 반으로 떨어진다는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 이 법칙은 비교적 적중하여 2020년까지는 꾸준히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2020년 이후부터는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나노 공정이 심화될수록 회로를 구성하는 원자의 전자가 다른 곳으로 뛰어버리는 양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하면서 성능 향상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무어의 법칙이 완전히 깨지진 않았지만, 2배를 달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이를 우회하면서 더 높은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바로 칩렛(Chiplet)이다.
여러 반도체를 한 몸으로 만드는 기술, 칩렛
AMD RDNA3 아키텍처의 구조도, 중간에 있는 반도체는 모두 개별 생산된 뒤 일체형으로 패키징 된 형태인데 이를 칩렛이라 한다 / 출처=AMD
칩렛이란 시스템 반도체의 구성을 하나의 반도체로 생산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모듈로 분할 생산한 다음 하나로 결합하는 형태다. 일반적인 시스템 반도체는 단일 칩에 구성 요소를 모두 결합하는 모놀리식(Monolithic) 방식으로 생산하며, 트랜지스터 밀도를 끌어올려 성능을 높인다. 하지만 전체 구성 요소에 결함이 없어야 하고, 성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반도체의 크기를 더 크게 키우다보니 제품 단가와 크기가 상승하는 문제가 생겼다.
엔비디아 에이다 러브레이스 아키텍처의 구조도, 모든 반도체가 하나의 칩으로 설계된 모놀리식 칩이다 / 출처=엔비디아
반면 칩렛은 각각의 구성 요소를 별도로 생산한 뒤 합친다. 덕분에 시스템 반도체를 구성하는 각 칩마다 최적의 공정을 적용할 수 있고, 이는 단가 절감과 높은 수율 확보로 이어진다. 또한 일부에 결함이 있으면 전체 요소에 문제가 생기는 모놀리식과 달리, 완성된 칩만 엮으면 되고, 서로 다른 공정 등을 적용해 생산 단가나 전력 효율 등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각 칩이 연결돼있는 구성이 아니므로 통신 선로가 필요하고, 이로인해 성능에 제약이 걸릴 수 있다. 최소한 2010년대 중반까지는 이 문제로 인해 칩렛이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5년, AMD는 1세대 AMD 라이젠 스레드리퍼 CPU를 제작하는 데 멀티 칩 모듈(MCM)이라는 방식을 선보였다. MCM 공정은 각각 생산 된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하나의 기판에 패키징하는 기술로, 전체 칩의 크기는 줄이고 생산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유효하다. 하지만 칩 사이의 통신 기술의 한계로 성능에 병목이 생기는 한계가 있었는데, 2017년부터는 인피니티 패브릭이라는 연결 기술을 적용해 병목을 크게 완화했다. 칩을 분할해서 생산하고, 합치는 칩렛 기술이 본격적으로 가능성을 인정받게 된다.
AMD는 모놀리식 구조에서 멀티 칩 모듈 방식을 적용하고, 그 다음에 칩렛 구조를 적용했다 / 출처=AMD
2021년, AMD는 MCM 공정보다 한 차원 위인 칩렛 기술로 생산한 CPU인 AMD 라이젠 3000 시리즈를 선보인다. 3세대 라이젠은 칩렛 구성을 활용해 CPU 구성의 핵심인 코어는 7나노 공정을 활용하고, 최신 기술이 필요 없는 인터페이스는 12나노 공정으로 제조한 다음 합친다. 모놀리식 방식에서는 16코어 프로세서를 만들기 위해 16개의 코어가 모두 정상 제조돼야 하고, 불량일 경우 폐기하거나 칩을 잘라서 하위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면 칩렛 구조를 도입하면 8코어 칩을 만든 뒤 두 개를 붙이는 식으로 만들 수 있어서 단가는 절감하고 불량률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AMD는 현재 5세대 라이젠 프로세서까지 꾸준히 칩렛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최상의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모놀리식 방식을 고수해오던 엔비디아와 인텔도 일부 제품군에 칩렛 구성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인텔은 올해 초 공개한 서버용 CPU인 제온 맥스 시리즈에 칩렛 구조를 적용했고, 14세대 인텔 프로세서도 칩렛 구성과 비슷한 타일 아키텍처를 도입할 예정이다. 엔비디아의 경우 성능 확보를 위해 모놀리식 칩을 주력으로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형태의 칩들이 호환되는 NV링크 C2C로 칩간 상호 연결성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칩렛 컨소시엄 구성, 생태계 넓어질 것
글로벌 반도체 및 기술 기업들은 칩렛 구조를 효율화하기 위해 ‘범용 칩렛 인터커넥트 익스프레스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표준화에 나서도 있다 / 출처=UCIe
칩렛 기술의 전망은 밝다. 2022년, AES, AMD, Arm, 구글 클라우드, 메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삼성, TSMC 등의 기업들로 구성된 범용 칩렛 인터커넥트 익스프레스 컨소시엄이 발족했다. 이 컨소시엄은 반도체 기업들이 제조하고 있는 제품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상호연결을 표준화하고, 개방형 칩렛 생태계를 만드는데 주력한다. 현재 엔비디아, 브로드컴, LG전자, IBM, 마이크론, 미디어텍 등 수많은 반도체 기업들도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칩렛 기술은 반도체 생산의 효율화는 물론 최적의 성능을 확보하는데도 중요한 기술이다. 이미 AMD가 상업성을 증명했으며, 최근에는 그래픽 카드와 AI 가속기에도 이 기술을 적용해 시장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이외에도 칩렛은 소비전력 개선과 자원의 효율화, 반도체 생태계의 협력구조 개념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앞으로도 모놀리식 반도체가 꾸준히 최상의 성능을 차지하겠지만, 효율적인 반도체 구성 측면에서는 칩렛 기술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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