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준 동문 온라인 진로특강이 9월 25일(금) 인문캠퍼스 본관 3층 디지털미디어학과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윤 동문은 1993년 명지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97년 졸업 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창원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검사, 창원지방검찰청 형사 제3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수사지원과장 등의 직책을 역임하며 검사 외길을 걸어왔다. 현재 인천지방검찰청 외사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 재직하며 부정부패와 맞서고 있는 윤병준 동문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1.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윤병준 동문께서는 올해부터 인천지방검찰청 외사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 재직 중이신데요, 본인 소개와 함께 외사범죄형사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부터 소개하자면, 저는 명지대학교 93학번으로 97년도에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인천지검 외사형사부라는 곳에서 부장검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외사형사부라는 곳은 인적·물적인 모든 국제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유형의 범죄들을 전담하는 곳입니다. 공항이나 항만 관련한 세관, 세관에서의 밀수, 외환 관련된 범죄 등을 다루기 때문에 세관과도 연관이 됩니다. 요즘 난민 문제, 외국인들의 불법체류 문제도 많이 발생하는데 이런 출입국 관련 문제도 외사형사부에서 처리합니다. 인천지검으로 가기 직전에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라는 곳에서 수사지원과장이라는 직책으로 일했었고, 그 직전에는 창원지검에서 특수부 부장검사로 근무해서 지금 있는 곳이 부장검사로는 세 번째입니다. 창원지검 전에는 중앙, 청주나 포항, 수원 등등 여러곳에서 십오 년 정도 평검사로 근무했었습니다.
2. 윤병준 동문님의 대학생활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다면 몇 가지만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먼저 되묻고 싶습니다. 요즘 학생들의 대학 생활이 어떤지 말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전체, 세계 전체가 그렇듯이, 몹시 고달프고 힘들 것 같아요. 고학년 혹은 예비역 후배님들께서는 취업 문제로 여러 가지 어려우실 것 같고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1년 가까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으니 학생분들이 몹시 고달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93년부터 97년까지, 4년 동안 대학 생활을 할 때 물론 여러 가지 꿈과 낭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대학 생활을 하던 저도 무척 고달팠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군에 빨리 다녀올 것인지, 아니면 사법시험을 준비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이런 고민으로 1학년, 2학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러다 2학년 2학기쯤 군대를 미루고, 병역을 연기한 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자 학교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의 자리는 아니었고, 인문캠퍼스 뒤편에 허름한 작은 건물 하나가 있었습니다. 거기가 소위 말하는 고시반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행사, 사시, 공인회계사 CPA 등등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도서관 본관 9층, 10층 또한 이용하였고, 중간에 식사나 잠은 고시반에서 같이 해결했어요. 1년 반쯤 그렇게 생활하다가, 3학년 후반쯤 옮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이미 학원 수강이라는 게 되게 유행을 했었어요. 그때는 신림동에 고시촌이라는 곳이 있었고, 저는 3학년 가을쯤에 짐을 다 싸서 신림동으로 갔습니다. 지금도 뚜렷하게 생각이 납니다. 책과 옷, 이불들을 제일 큰 등산용 배낭에다 꽉꽉 눌러 채우고, 그걸 어깨에 메고 양쪽 손에 보따리를 한가득 들고 542번 버스를 탔습니다. 그 버스는 지금도 있을 겁니다. 신림 9동, 거의 처음 가는 동네였죠. 관악산 아래에 있는 고시촌, 1.5평 정도 되는 방에다 짐을 풀고 졸업할 때까지 소위 얘기하는 고시촌 생활을 했습니다.
1학년, 2학년 때는 놀면서 군대에 갈 것인지, 사법시험을 치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다음 2학년 후반부터는 고시원에 들어가서 예비역 형들, 경영학과나 행정학과나 법학과 선배들이랑 함께 도서관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었고요. 3학년 때는 졸업할 때까지 계속 신림동에 있었기 때문에 대학 생활이 어땠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저도 무척 고달팠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또 에피소드 겸 여러분들에게 참고가 될까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97년에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저는 사실 삼수를 하고 명지대에 입학했습니다. 97년 졸업할 때쯤 되니까 나이가 상당했죠. 97년에 사법시험은 1차도 합격이 안 된 상황이었고, 군대에 언제 갈 것인가 하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가족이 되게 많은데, 그 중에서 제일 귀한 막내 아들입니다. 그래서 졸업식이라고 누나들과 부모님이 다 오셨어요. 그러나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죠. 졸업은 하는데 해결된 건 하나도 없고, 군대에 갈 일만 남은 것 같고 해서 졸업을 기쁘게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랑 가족에게 아주 냉담하게 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식사도 안 하고 가족들을 돌려보내고, 저는 신림동으로 바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을 치르면서 사진을 정리하는데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더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들과 제가 비록 다른 세대지만, 저도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이 정체성을 세우고,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게 20대, 바로 여러분들이 지금 몸담고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때는 분명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많은 방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그만큼 젊은 시기이기 때문에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그래서 훨씬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열정이나 에너지 넘치는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마음과 섞여 격렬하게 상호작용하는 시기가 바로 대학 생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지금 여러모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방황하는 후배님들이 계시더라도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니 잘 견뎌내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윤병준 동문께서는 약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검사 외길을 걸어오셨는데요, 학창 시절에 검사 외에 다른 진로를 생각하셨던 적은 없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대학 시절에 하기에는 아주 모호하고 어려운 주제인 것 같아요.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부장검사이니 법조인을 오랫동안 꿈꿨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법학과에 대한 생각은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전혀 없었어요. 검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사법시험 합격하고 나서 연수원 2년 수료를 마치는 그 마지막 순간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제가 법조인을 꿈꾸고, 정의로운 검사를 꿈꾼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서 선택과 적응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뚜렷한 꿈을 가지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선생님도 어릴 때부터 많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인생으로 보면 어릴 때 꿈을 성취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요. 그리고 저는 자꾸 그렇게 얘기하시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것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황에 따라서, 여건에 따라서 꿈은 계속 변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은 지금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지금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못할 정도로 막막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진지하게 탐색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현재 하는 일이나,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상황에 대처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자기가 나아갈 바른 길이 보일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법시험을 보겠다는 결심 후 어려움이 있었지만, 졸업 후 2년 뒤인 99년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다른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학생 여러분들께서도 열린 마음,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황에 맞게 신중하게 탐색을 하시다 보면 여러분의 진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7. 명지대학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동안은 바쁘다는 개인적인 핑계로 학교를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총장님과 법학과 학장님, 교수님을 뵙고 난뒤 학교도 둘러보게 됐습니다. 제가 다닐 때보다 많이 발전하고 명성도 커졌고, 이런 측면에서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제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라 대학을 살필일이 종종 있는데, 명지대학교의 객관적인 레벨도 상당히 높더라고요. 학교가 정말 많이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후배님들에게는 제가 평검사 시절, 졸업생으로 명지대학교에게 느꼈던 감정과 지금의 느낌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대학 시절이나 경력이 낮았던 평검사 시절에는 명지대학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법조인들은 소위 일류대를 나온 친구들도 많았기에 위축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대학 시절에 사법시험에 매달리고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학교에 대한 만족감이 적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제가 다니던 시점에는 그랬는데, 요즘에는 또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그리고 지금 제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앞으로 이 사회에서의 대학 서열은 사라질 거라는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의 대학 서열은 저희 시절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새는 평가도 다 블라인드로 하잖아요. 저희 때만 해도 저, 혹은 제 전 세대만 해도 소위 얘기하는 명문대 졸업장 하나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는 확실하게 갔습니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건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거예요.
저희 어머니가 90세까지 사셨는데, 저나 여러분들은 100세, 120세까지 얘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사회적으로 정년이라는 게 60대 초반이거든요. 그 이후에도 30년,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10대에 머리가 트여서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20대까지도 헤매다가 30대, 40대에서 뭔가 깨달음을 얻고 큰 성취를 얻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 능력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것에는 각각의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인들이나 사회적으로 저명하신 분들, 지금 성공하신 분들을 살펴보고 말씀을 듣다 보면, 늦게 트인 사람들 중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좀 더 빨리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것과 같은 강박과 더불어 시기적인 부분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맡은 직책에서 우리 명지대학교를 바라보았을 때 어떤 의미인가 말씀드리면,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괜히 위축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제가 어디까지 승진해서 언제 퇴임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제가 우리 학교를 졸업한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돼요. 희소성도 있고요. 대학 서열이라든가 평가라든가 이런 게 여전히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제가 볼 때 우리 대학, 명지대학교는 제가 다닐 때보다 훨씬 발전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여러분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죠. 명지대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올 때 능력을 발휘한다면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한 일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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