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돔은 10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생선이지만 척박한 땅의 제주도 사람들은 자리돔만으로도 깔끔한 한 상을 차려낸다. 싱싱한 자리돔을 그 자리에서 뼈째 썰어낸 고소한 자리회, 숯불에 통째로 구운 바삭바삭 자리구이, 자리돔을 듬성듬성 큼지막하게 썬 후 오이, 양파 등 각종 야채와 함께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자리무침까지. 하지만 자리돔을 가장 맛나게 즐기는 방법은 뭐니뭐니 해도 자리물회다. 자리물회는 5~6월 사이 딱 이 시즌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중에 별미니까.
자리물회는 고추장을 사용하는 육지의 물회와 달리 된장을 소스로 사용한다. 물회뿐 아니라 제주도에선 대부분의 음식에 된장을 기본으로 사용한다.
뼈째 얇게 썬 자리돔, 자리돔과 크기를 맞춰 송송송 채 썬 오이, 양파 등 각종 채소가 듬뿍 올려진 자리물회,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소주 1병 정도는 그냥 술술 넘어가겠다.
5~6월 사이 딱 이 시즌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중에 별미
그런데 갑자기 궁금증이 인다. 자리돔은 왜 이름이 ‘자리돔’일까? ‘돔’이 붙었으니 자리돔도 옥돔과 마찬가지로 돔 종류인데, ‘자리’란 이름을 붙인 건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않고 한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리돔은 1년 내내 제주도의 연안에서 자라지만 맛이 가장 좋고 많이 잡히는 때가 바로 5~8월 사이란다. 여름에 알을 낳고 나면 살이 물러져서 맛이 떨어진다고.
이 자리돔에는 제주 사람들의 고된 일상도 녹아 있다. 과거에는 갯가에서 자리를 파는 할망들이 중산간 지역까지 자리돔을 이고 가 중산간 지역의 주산물인 메밀과 맞바꾸었다 한다. ‘자리 삽서~ 자리 삽서~(자리 사세요)’를 외치면서 말이다. 요즘에도 간혹 낮 시간에 집에 있으면 매일 같은 시간 ‘자리 삽서~’란 외침을 듣는다. 물론 할망은 아니고 제주의 마을 곳곳을 돌며 자리를 판매하는 ‘자리돔’ 트럭이다.
지금 시즌에는 제주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리돔이 잡히기 때문에 어딜 가도 자리물회를 맛볼 수 있지만, 가장 맛난 곳을 꼽으라면 단연 보목포구일 게다. 제주도 내에서도 자리돔이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은 모슬포와 보목 두 곳이다. 그런데 두 곳의 자리돔에도 차이가 있다. 모슬포는 보목 앞바다에 비해 물살이 거칠고 빨라 자리돔이 보목에 비해 크고 뼈가 억세다. 그래서 모슬포에서는 자리물회보다는 자리구이를 주로 먹고, 보목에서는 자리물회를 주로 먹는다.
제대로 된 자리물회를 맛보려면 보목포구로 가야 한다.
제대로 된 자리물회를 맛보려면 보목포구로 가야 하는 이유다. 포구 앞에 몇 곳의 횟집이 있는데 사실 어느 곳을 가도 그다지 실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리뷰어 라라는 그중 한 곳, 바다나라횟집을 다녀왔다.
참, 제주에는 원래 물회 종류는 자리물회밖에 없었다 한다. 한치물회, 전복물회 등 다른 물회 메뉴들은 관광객을 타깃으로 새롭게 개발한 메뉴라고. 자리물회를 반드시 맛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5월 마지막 주에 찾은 보목포구. 포구 앞에 자리한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한쪽에선 쉴새 없이 자리돔을 손질하고, 바로 옆에선 자리돔 판매가 한창이다. 매일 아침 12시까지 자리돔을 판매하는 건데, 매년 열리는 보목자리돔축제 기간 만이 아니라 자리돔 시즌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매일 오전에 이렇게 자리돔을 판매하는 것 같다. 가격은 큰 것이 1kg에 1만원, 작은 것이 1kg에 7000원이다. 큰 것은 구이로 먹기 위해, 작은 건 젓갈을 담기 위해 사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목포구 앞에선 자리돔 판매가 한창이다.
포구의 풍경을 뒤로 하고 포구 바로 앞에 위치한 바다나라횟집으로 들어가 본다.
이날은 다소 쌀쌀했는데도 자리돔 시즌이 시작돼 그런지 손님이 하나둘 자리를 메우기 시작한다.
식당에 들어서며 옆 테이블을 보니 자리물회와 고등어구이가 함께 놓여 있다.
‘우리는 4인이니 자리물회와 고등어구이를 섞어 주문하면 좋겠네~~’
생각하고 있는데, 자리물회를 주문하면 고등어구이를 서비스로 내준단다~~
2인분엔 고등어구이 반 마리, 4인분엔 한 마리가 서비스다.
주문에 앞서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니 물회는 2인분 이상 주문가능하다고 돼있다.
하지만 혼자 온 손님이라면 1인분도 내어준다고.
다른 집과 달리 이 집은 물회 종류가 두 가지다.
제주식 된장물회와 새콤달콤 물회.
관광객들에게 제주도의 된장물회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라 그런지 두 종류의 물회를 내놓은 듯하다. 물론 제대로 된 제주 자리물회를 맛보고 싶다면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제주식 된장물회를 선택해야 한다.
일행 중에 된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 1인분만 새콤달콤 물회로 주문했다.
잠시 기다리니 내온 반찬.
물회 종류를 먹을 땐 딱히 많은 반찬이 필요하지 않은데, 김치, 콩나물무침, 콩자반, 마늘장아찌, 고추 등 생각보다 반찬이 다양하다. 당연히 고등어구이도 한 마리.
물회를 주문하면 고등어구이가 서비스로 나온다.
반찬이 차려지고 얼마 되지 않아 내온 물회.
3인분을 주문한 제주식 된장물회는 커다란 양푼에, 그리고 1인분의 새콤달콤 물회는 작은 양푼에 담겨있다. 밥도 한 공기씩 가득가득.
개인 그릇에 먹을 만큼 자리물회를 뜨고 식초와 제피를 살짝 넣는다.
제주 토박이들은 자리돔의 뼈를 연하게 한다 해서 빙초산을 넣기도 하는데, 빙초산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사과식초 몇 방울에 말린 초피(제피) 한 줌 정도면 충분하다.
사실 제주식 된장물회도 음식점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른데, 이 집의 물회는 된장맛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처음 도전하는 사람에게도 별다른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을 듯하다.
이집에선 제주식 된장물회와 새콤달콤 물회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간판은 ‘바다나라횟집’인데 메뉴판을 보니 회는 겨울 별미인 히라스회만 취급하는 모양이다.
자리물회 말고도 자리구이, 자리강회가 메뉴판에 있는 걸 봐서는 자리돔 특화형, 그리고 여름철의 한치 특화형 음식점으로 보인다. 또 하나 눈에 띈 건 쥐치탕(객주리조림). 쥐치탕 역시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인데 제주도에도 파는 집이 많지 않다. 다음에 또 온다면 쥐치탕을 맛봐야겠다.
자리물회는 제주시 지역보다는 서귀포시 지역이 저렴한 편이다. 같은 가격이라도 제주시에선 양이 적어(특히 관광객이 많은 지역) 한 그릇을 먹고도 살짝 부족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데, 서귀포시에선 한 그릇으로 오후 내내 든든하다. 가격은 바다나라횟집과 마찬가지로 1인분에 13000원 정도가 일반적인데 고등어구이를 서비스로 내주는 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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