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겸 합참의장 내정자가 5월26일 용산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지난 25일 신임 합동참모의장에 김승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사 42기)을, 육군참모총장에 박정환 합동참모차장(육사 44기)을 각각 내정하는 등 대장 7명 전원을 교체하는 대규모 군수뇌부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는데요, 이번 인사를 통해 9년만에 육사(육군사관학교) 출신이 합참의장이 됐고, 취임 1년도 안된 해·공군 참모총장도 이례적으로 모두 교체됐습니다.
◇ 과거 정권교체 때보다 더 큰 폭의 군 수뇌부 물갈이 인사
과거 정권교체 때마다 군 수뇌부 물갈이 인사가 이뤄져왔지만 이번 인사는 당초 예상보다 큰 폭으로 단행됐는데요, 보통 취임 1년이 안된 경우는 인사에서 제외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취임 10개월여 된 공군참모총장은 물론 5개월여에 불과한 해군참모총장도 교체됐기 때문입니다. 대장 임기는 2년으로 규정돼 있고 보통 1년~1년6개월 이상 재임한 뒤 교체돼왔기 때문에 이번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옵니다. 또 문재인 정부 청와대 근무 경력이나 특정 수뇌부와의 유착설 등 때문에 배제된 일부 인물들(육사 44기 김현종 중장, 육사 45기 강건작.이정웅 중장 등)에 대한 일부 동정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문재인 정부 시절 군수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한계에 도달해 전면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했고, 육사 배제, 특정지역 편중 인사 문제 등을 바로잡는 측면에서 이번 인사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군의 체질 변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인사들이 발탁됐다는 얘기들도 나오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김승겸 합참의장 발탁이 아닐까 합니다.
1992년5월 은하계곡 대침투작전에서 북한 무장공비 4명을 전원 사살한 공로로 당시 김승겸 중대장(대위)이 최세창 국방장관으로부터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고 있다. /뉴스뱅크 이미지
김승겸 합참의장 내정자는 1992년 5월 3보병사단(백골부대) 13중대장 시절 은하계곡 대침투(대간첩) 작전에 참여해 북한 무장공비 3명 중 2명을 사살한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는데요, 은하계곡 대침투작전은 19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한 무장공비 3명을 차단 및 수색, 교전을 통해 전원 사살한 작전으로 ‘5.22 완전작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 중대장 때 북 무장공비 2명 사살해 을지무공훈장...현역 장군 중 유일
그는 한국군 현역 장성 중 유일한 무공훈장 수훈자인데요, 그의 을지무공훈장 수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 이후 전시가 아닌 평시에 수여된 최초의 을지무공훈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 국방부가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Legion Of Merit’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은하계곡 대침투 작전은 북한 무장공비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군은 무릎 높이의 관목 지대에서 노출된 상태로 작전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하는데요, 참고로 그가 1992년 동기회지에 기고한 글 일부를 그대로 소개합니다.
2020년11월 서울 용산미군기지 콜리어필드 체육관에서 열린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42주년 기념식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사령관과 김승겸 부사령관이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투입 당시 수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적은 과연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은거해 있는 것인지, 전투편성은 어떻게 할 것이며 병력운용과 통제대책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적과 교전하게 된다면 어떤 양상이 될 것이며 그때 지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중대장으로서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곳에서 전투지휘를 해야 하겠기에 제 자신의 죽음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2015년 42년만의 남북간 DMZ 포격전 때 사단장으로 대응포격 지휘
“군인이면 누구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을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7개월된 딸과 가족, 그리고 부모님의 얼굴이 한순간 스쳐 지나갔고 입고 있던 야전상의를 벗어 정돈하면서 ‘지금 내손으로 개어 놓은 이 옷을 작전이 끝나면 누가 가지고 갈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의연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어야 하겠다는 생각과 중대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굳어있는 병사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하고 최종적인 전투준비를 확인했습니다.”
초급장교인 중대장, 즉 대위 시절 경험한 이 같은 목숨을 건 실전은 군생활 두고두고 그에게 큰 자양분이 됐다고 합니다. 김 내정자는 은하계곡 대침투작전 외에도 28사단장 시절인 2014년 북한의 고사총 도발과 2015년 북한군 DMZ 포격도발을 겪고 이에 대한 대응포격(사격)을 지휘한 경험도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K-55 A1 자주포가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2015년8월 북한의 DMZ 포격도발 때 28사단은 K55자주포 포탄 29발을 DMZ 북측지역으로 대응포격했다. /조선일보 DB
특히 2015년 DMZ 포격도발은 42년만의 남북한 DMZ 포격전으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28사단은 북한군의 14.5㎜ 고사총 및 76.2㎜ 곡사포의 포격도발에 대해 155㎜ 자주포 29발을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지역으로 대응 사격했습니다. 대응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군보다 몇배 강한 포격으로 대응한 셈입니다.
◇ 세계 최대 야전군사령부 지휘하는 신임 지상작전사령관도 작전통
이에 따라 김 내정자에겐 ‘3번의 실전 경험을 가진 전군 유일의 장군’이란 별칭이 따라 다닙니다. 초급장교 때 생사를 건너는 실전을 경험해서인지 그는 매우 꼼꼼하고 까다로운 성격이고 부하들에게 엄한 편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그의 합참의장 내정설이 돌았을 때 일부 장교들은 “합참을 빨리 떠나야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는군요 ㅎ.
하지만 그동안 우리 군의 군기강이 많이 해이해지고 훈련부족 등으로 실전과는 거리가 먼 군대가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을 기대하는 시각도 많은 듯합니다. 세계 최대의 야전군사령부로 불리는 지상작전사령부 전동진 신임 사령관도 군 주요 작전 보직을 모두 거친 보기 드문 작전통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접견실에서 열린 장성 진급·보직·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등 신임 군 수뇌부의 경례를 받고 있다. /뉴스1
저는 올해 초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인질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청해부대 최영함 함장으로 작전을 지휘했던 조영주 예비역 해군준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작전 비화와 교훈 등을 솔직담백하게 담은 책 ‘아덴만 여명작전 현장 전투 실화’를 낸 것을 계기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 “평시와 실전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실전 같은 훈련 반복해야”
작전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얘기를 아주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인상 깊었는데요, 특히 “평시와 실전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해야 합니다. 군인은 항상 전쟁, 전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라는 말씀이 가장 가슴에 와닿더군요.
마침 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 이종섭 국방장관 등 새 군 수뇌부는 ‘제대로 훈련하는 군대 다운 군대’를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3군참모총장, 지상작전사령관 등 군 수뇌부의 노력만으로 한국군의 체질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계기로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가 사라지고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군대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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