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88년, 아시아에서 열린 두 번째 하계 올림픽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인 서울 88 올림픽으로 활기차던 때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88 올림픽을 성황리에 마친 이후, 경제적으로 부흥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만큼, 국민들의 사치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당시의 현대차는, 이러한 경제 흐름에 발맞춰 국산 최초의 2도어 쿠페를 출시하겠다고 살며시 언급한 적이 있다. 본격적으로 스쿠프의 형체가 잡히기 시작한 건 1989년 프로젝트명 Sports Looking Car 이하 ‘SLC 프로젝트’가 도쿄 모터쇼에 처음 공개되었다. 이때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파격적인 행보였으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국산 스포츠카에 대한 존재에 기대에 차올랐다. 그 시절의 스쿠프는 어떤 모습을 가진 차였는지 오늘 이 시간 함께 알아보도록 해보자.
글 권영범 에디터
전설의 알파엔진을
탑재한 최초의 차
스쿠프의 등장은 1990년 2월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며, 꽤 추웠던 겨울이었다. 스쿠프의 TV 광고를 먼저 바라보면, 파격 그 자체였던 게 기억에 남는다. 당시 국산 스포츠카의 개념이라고 해봤자 대우차의 르망 레이서가 전부였는데, 이마저도 단순히 르망의 파생형 3도어 해치백에 불과했다. 즉, 애초에 노리고자 했던 마케팅 포인트가 달랐다.
아무튼, 스쿠프는 출시 초기에 엑셀에서부터 사용되던 4G 15 미쯔비시 오리온 엔진을 탑재했다. 최대 출력 97마력, 최대 토크 14.3kg.m의 성능을 발휘했으며, 아무리 SLC라는 타이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저조한 성능이었다. 그 때문에 현대차는 이러한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종감속 기어비를 타이트하게 세팅하여 출시하였는데, 스타트는 경쾌할지언정 기어비가 극단적으로 타이트해지다 보니 소위 우리가 말하는 ‘후빨’에선 열세였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출시일로부터 3개월 뒤인 5월에 국내 최초 독자개발 엔진 ‘알파 엔진’을 탑재하여 출시하기 시작하였고, 흡기 2 밸브 배기 1 밸브의 구조를 가진 이 엔진은 최대 출력 102마력, 최대 토크 14.5kg.m라는 수치를 기록, 최고 속도는 제조사 공식발표 기준 180km/h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국산 차 최초 ‘터보’를 장착한 스쿠프 터보까지 동년도 10월에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고성능의 시대를 꿈꿨으며 이때 스쿠프 터보는 알파 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스펙은 최대출력 129마력, 최대토크 18.3kg.m라는 수치를 나타냈다.
과연 이 차는
스포츠카가 맞는가
스쿠프가 출시했을 당시, 굉장히 모호했던 SLC의 명칭으로 인해 당시 업계를 넘어 자동차에 관심이 있던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스쿠프를 두고 “이 차는 스포츠카가 아니다!”, “아니다! 스포츠카가 맞다”라는 논쟁이 잦았다.
당시 스포츠카가 아니라는 측의 입장은, 스포츠카라고 하기엔 민망한 운동 성능과 터보 모델 같은 경우 인터쿨러를 장착하지 않아, 여름철만 되면 과열 때문에 골치 아픈 부분, 그리고 정통 스포츠카는 FR인데 스쿠프는 FF를 채택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반론하는 입장도 당연히 있었다. FF의 특성을 가진 스포츠카는 대표적인 예시로 엘란이 있었고, 당시 우리의 기술에선 상당히 진보된 차량인 건 사실이라는 부분에서 반론이 제기되었다.
훗날 후속작으로 나온 티뷰론, 투스카니의 경우 전신이었던 스쿠프에 비해 일취월장해진 바디 강성과 주행 능력이 강점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여전히 “이 차는 가짜다”라는 인식이 강했었고, 현대차의 마지막 쿠페인 제네시스 쿠페가 출시 되고서야 그 논란은 종결되었다.
총 24만대
규모의 판매량
스쿠프는 1992년 6월 한차례 페이스리프트를 겪게 된다. 아울러 차량명도 “뉴-스쿠프”라는 명칭으로 변하게 되는데, 초기형에서 선보였던 깍둑 썬 디자인을 탈피하고 유선형의 디자인을 적극 반영한 게 특징이었다. 이후 동년에도 열린 미국 파이크스피크 힐 랠리에 참여해 우승한 이력을 토대로 적극적인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다.
뉴-스쿠프에 들어선 미쯔비시 오리온 엔진을 라인업에서 삭제, 변경된 디자인 외적으론 크게 변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터보 모델 한정으로 계기판에 부스트 게이지가 장착된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였다.
이후 에어로 다이나믹 범퍼와 에어댐이 추가됨에 따라 공력 성능에 만전을 기울였다. 아울러 고강도 도어 세이프티 빔, 오늘날의 명칭으론 ‘임팩트 바’를 추가하여 안전성을 향상했으며, 컬러 시트까지 옵션으로 제공하여 소비자의 취향에 따른 스쿠프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이후 1996년 4월, 스쿠프는 후속작인 티뷰론에 자리를 물려주며 단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스쿠프가 출시되는 동안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조롱 또한 상당했었는데 그런데도 국내 모터스포츠 투어링 A, B, C 모두를 제패했을 정도로 그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 오늘날에 들어선 스쿠프의 씨가 말라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 남아있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스쿠프들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자주는 아닐지언정 향후 오랫동안 도로에서 마주치길 희망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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