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승용 모델에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속도를 위해 제작된 고성능 자동차들은 제로백 기록으로 대표되는 가속 성능을 두고 자존심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강력한 파워트레인 성능과 더불어 공기역학적 디자인, 공차중량 최소화 등 제로백 기록을 0.1초라도 줄이려는 제조사들의 노력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전동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내연기관 차들의 제로백 기록 경쟁은 다소 허무한 꼴이 되었는데, 16기통 쿼드터보 엔진을 탑재한 부가티도 못 깬 2초의 벽을 쿼드모터 전기차들은 밥 먹듯이 깨고 있다. 이 같은 형국에서 억대 슈퍼카와 가성비 고성능 전기차의 가속 대결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떠올랐고, 최근 기아의 EV6 GT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와 맞붙었다.
글 김현일 기자
국내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EV6 GT의 제원은 어느 정도?
EV6 기반 고성능 모델인 EV6 GT는 전장 4,695mm, 전폭 1,890mm, 전고 1,545mm로 기존 EV6보다 약간 낮고 길어 스포티한 인상을 준다. 더불어, 고성능 차량임을 부각하는 요소로 21인치 전용 휠과 네온 색상의 브레이크 캘리퍼, 후면부 수직 패턴 디퓨저 등이 적용되었다. 실내에는 운전자를 지지해주는 스웨이드 스포츠 버킷 시트가 장착되었으며 GT 드라이브 모드를 활성화할 수 있는 D컷 스티어링 휠도 찾아볼 수 있다.
풀타임 사륜구동 방식을 채택한 EV6 GT는 전륜에 160kW, 후륜에 270kW 전기 모터를 탑재하여 도합 최고 576마력의 힘을 발휘하며, 최대 토크는 75.5kg.m에 달한다. 이에 따라 2,160kg에 달하는 거구가 최고 260km/h 속도에 거뜬히 도달하며,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는 단 3.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출시와 함께 뉘르부르크링 1위
아벤타도르 SVJ 쿠페의 가속 성능
2018년 출시한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는 전장 4,943mm, 전폭 2,273mm, 전고 1,136mm의 날렵하고 아름다운 몸집에 기본 사양 대비 70마력 상승한 최고 770마력을 뿜어내는 6.5L V12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했다. 이에 따라 73.4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며 최고 속도는 350km/h를 웃도는 수준이다.
전 세계 900대 한정 물량으로 생산된 아벤타도르 SVJ 쿠페는 경량화를 위해 도어 등 차량 곳곳에 카본 파이버 소재를 이식했고, 덕분에 차체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1,525kg로 공차중량은 오히려 줄었다. 아벤타도르 SVJ는 출시 당시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6분 44.97초에 주파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 모델’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으며, 제로백 기록은 약 2.8초를 기록했다.
EV6 GT vs 아벤타도르 SVJ
가속 대결 결과는 어땠을까
아벤타도르 SVJ는 한눈에 보아도 고성능 슈퍼카 그 자체의 형상을 한 반면 크로스오버 형태의 EV6 GT는 패밀리카의 냄새를 풍긴다. 두 차량의 무게 차이는 635kg이며, 가격 차이는 영국 기준 317,355파운드(한화 약 5억 570만 원)에 달한다. 성능 제원에서도 EV6 GT가 최대 토크에서만 약 2kg.m 앞설 뿐이었는데, 과연 대결 양상은 어땠을까?
유튜브 ‘carwow’ 채널에서 진행한 두 모델 간의 드래그 레이스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EV6 GT가 전기 모터의 성능을 앞세워 초반을 주도했지만, 아벤타도르 SVJ가 탄력을 받자마자 곧바로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400m 주행 기록에서 아벤타도르 SVJ는 10.9초를, EV6 GT는 11.9초를 기록했는데, 이탈리아 정통 슈퍼카를 상대로 거둔 성적임을 고려하면 꽤 재밌는 결과이다.
포르쉐 911과 모델3와도 속도 대결
세 모델 중 가장 빠른 차량은?
지난달 유튜브 ‘김한용의 MOCAR’ 채널에서는 EV6 GT와 테슬라 모델3, 포르쉐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 간의 드래그 레이스를 진행했다. 보급형 테슬라와 가장 느린 포르쉐 911, 그리고 EV6 GT의 삼파전 양상이긴 했지만 가격은 EV6 GT가 가장 저렴했고, 대결 이전 제로백 성능 측정에서도 EV6 GT가 3.48초로 제일 빠른 기록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드래그 레이스 결과는 어땠을까? ‘성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EV6 GT는 월등히 앞선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고, 포르쉐 911은 가장 늦게 골인했다. EV6 GT의 성능에 김한용 편집장은 “대한민국의 자동차가 이래도 됩니까?”라며 놀라워했는데, 포르쉐 911을 주행하고는 “졌지만 가솔린의 매력은 대단하다”라며 “역시 차는 포르쉐였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EV6 GT의 글로벌시장 진출
기아 가성비 고정관념 깰까
한편, EV6 GT와 아벤타도르 SVJ의 드래그 레이스를 본 해외 네티즌들은, “이제 기아가 20년 전 하이퍼카보다 빠르네”, “기아 EV6 GT의 레이스를 더 보고 싶어지는걸”, “그래도 SVJ의 배기음은 절대 따라올 수 없다”, “누가 기아차가 400m를 12초 안에 주파할 거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겠냐고”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가성비를 갖춘 고성능 전기차이면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기에 주목받고 있는 EV6 GT는 ‘슈퍼카 킬러’라는 별명과 함께 지난달 북미와 싱가포르 시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기존 모델인 EV6의 흥행과 높은 인지도 덕분에 호실적이 예상되지만, IRA 여파는 유일한 걸림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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