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위해 만들어진 고성능 자동차들의 경우 서킷 랩타임도 물론 중요하지만, 단 몇 초간의 짧은 직선 주행을 통해 가속 성능을 가리는 드래그 레이스는 자존심 대결의 영역으로 취급된다. 드래그 레이스는 속칭 ‘직빨’이라고 불리는 직선 주행 가속 능력을 비교하는 대결이기 때문에 제로백 성능이 승패와 직결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모터로 가동되는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흥미로운 매치업이 성사되곤 한다.
얼마 전, 영국의 자동차 전문 유튜브 채널인 ‘carwow’에서는 기아의 고성능 전기차 EV6 GT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 간의 대결을 진행했고, 400m 주행에서 단 1초 차이로 EV6 GT가 패배하며 네티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최근, 미국 소재의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에서는 1초대 제로백 기록을 보유한 전기차와 전설의슈퍼카들을 대동하여 드래그 레이스를 진행했다.
글 김현일 기자
1,000 마력 이상, 제로백 2초 미만
속도를 위해 개조된 테슬라 모델S Plaid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이번 드래그 레이스 영상은 2000년대 초를 풍미했던 V12 슈퍼카들과 최신형 슈퍼카마저 압도하는 괴물 성능의 전기차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많은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았다. 3:1 대결의 주인공 격인 테슬라 모델S Plaid는 3개의 전기모터를 장착하여 최고 1,018마력을 발휘, 2.1초의 제로백 기록을 갖고 있는 초고성능 전기차이다.
심지어 이번 대결에는 테슬라 전문 튜닝회사인 언플러그드 퍼포먼스가 개조한 모델S Plaid가 참가했는데, 해당 차량은 서킷 전용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초경량 소재 등이 적용되어 2초 미만의 제로백 성능을 자랑한다고 한다. 결과는 보나 마나 전기차의 승리이기에, 진행자들은 대결마다 모델S에 페널티를 부여했다. 어떤 대결 양상이 펼쳐졌을까?
페라리 역사에 길이 남을 모델
399대 한정 생산, 엔초 페라리
영상에 등장한 차량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모델은, 브랜드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슈퍼카이자 창업주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엔초 페라리이다. 엔초 페라리는 F40의 헤리티지를 이어받은 399대 한정 생산 모델로, 1,365kg의 차체에 5,988cc V12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하여 최고 660마력을 발휘, 3.14초의 제로백 성능을 자랑한다.
모델 S Pliad와의 대결에서 엔초 페라리는 정지 상태가 아니라 속도를 끌어올린 이후 대결을 진행하는 어드밴티지가 적용되었다. 첫 대결에서 엔초 페라리는 약 65km/h의 속도로 출발점을 통과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추월을 허용했다. 결국 두 번째 레이스에서는 완전 가속 상태로 대결을 시작했고, 약 210km/h의 속도로 결승점을 통과하며 모델S Plaid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엔초 페라리와 같은 혈통
마세라티의 역작 MC12
엔초 페라리와 플랫폼, 엔진 등 상당 부품을 공유하는 마세라티 MC12도 모델S Plaid와의 대결을 펼쳤다. MC12 역시 엔초 페라리에 탑재된 V12 6.0L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했고 기본형 모델 기준 1,335kg의 공차중량과 최고 630마력, 제로백 3.8초 등의 성능 제원을 지녔다.
MC12는 라인업 중 유일하게 같은 환경에서 정석 드래그 레이스를 펼쳤고, 결과는 마음이 아플 정도로 처참했다. 이후 펼쳐진 두 번의 대결은 엔초 페라리와 동일한 조건 하에 진행되었고, 아쉽게도 완전 가속 상태에서마저 고성능 전기차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라인업 중 그나마 청년층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
마지막 대결에는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가 출전했다. F12 베를리네타는 812 슈퍼패스트의 전신인 페라리의 플래그십 모델로, 2012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됐다. 5억 원의 가격표가 붙은 F12 베를리네타는 자연흡기 6.3L V12 엔진을 탑재했고, 최고 출력 740마력 최대 토크 70.4kg.m의 힘을 발휘한다.
F12 베를리네타의 제로백 기록은 3.14초로 알려졌는데, 해당 영상에서는 4초대 초반을 기록했다. 본격적인 시합에서는 F12 베를리네타가 각각 1초와 2초 먼저 출발하는 방식이 적용되었고, 2초 먼저 출발한 레이스에서 비로소 동일 선상을 달릴 수 있었지만 정말 간발의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모델S는 코스트코나 가라고”
해외 네티즌들의 반응은
한편, 추억의 슈퍼카들과 모델S Plaid의 대결을 본 해외네티즌들은, “그리고 모델S는 픽업용 차량이죠”, “저 모델S는 1,200마력은 될 텐데…”, “빨라 봤자 영혼 없는 금속 덩어리일 뿐이야”, “신기술에 따른 한계는 인정할 수밖에”, “테슬라는 빠른 자동차, 이 슈퍼카들은 명작 그 자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리막, 피닌파리나 등 미래 고성능 차를 개발하는 회사들의 신형 전기 하이퍼카는 1초 중반대의 제로백을 기록할 것처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심장을 울리는 배기음과 진동을 느끼며 엔진을 돌리는 내연기관의 감성은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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