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 금곡 예비군 훈련대에서 사격 훈련 중인 예비군들.photo 뉴시스
“잔존가치 0원에 수리부속 없는 전차(M48), 견인차량 없는 1945년산 견인포(155㎜ 곡사포), 반백 년(50년) 수통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 예비전력의 현주소다.”
지난 10월 16일 국회 국방위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국방위원장)은 육군 동원전력(예비전력) 부대의 충격적인 노후장비 실태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육군이 안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가 ‘예비전력 정예화’를 국방개혁 과제로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군 동원부대의 열악한 장비·물자 수준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원부대가 운용하는 무기들의 노후도는 전차 100%, 장갑차 92%, 견인포 100%, 박격포 98%, 통신 100% 등으로 대부분의 장비가 내구연한을 초과한 상태다. 이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작된 155㎜ 견인포 등 70년 이상 지난 장비도 일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투배낭 등 각종 물자도 30~40년 이상된 것들이 많아 효율성이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투배낭은 69%, 요대는 50%, 수통은 53%, 탄입대는 66%가 구형인 실정이다. 안 의원은 사전질의 자료를 통해 “이러한 노후장비들은 수리부속 단종 등 과다한 정비소요로 유지관리가 어려울 뿐 아니라, 예비군이 현역 시절 쓰던 장비와 사용방식이 완전히 달라 전투력 발휘도 곤란하다”며 “군이 입으로는 예비전력 정예화를 강조하면서 사실상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전체의 0.4%, ‘쥐꼬리 예산’
이처럼 예비군의 장비와 물자가 열악한 것은 예산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예비군은 275만명이다. 그런데 예비전력 예산은 2067억원에 불과하다. 2000억원이면 F-15K 전투기 2대, K-2 ‘흑표’ 전차 25대 값이다. 전체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4%로 1%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쥐꼬리 예산’인 셈이다.
정부와 군 당국은 공식적으로 ‘국방개혁 2.0’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예비전력 강화를 공언해왔다. 국방부가 매년 발간하는 국방백서는 “전쟁 억제력을 확보하고 전쟁 지속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예비군을 상비군 수준으로 정예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8년 4월엔 동원전력사령부를 창설하는 등 본격적인 예비전력 강화에 나서는 듯했다.
이는 인구절벽에 따른 대규모 병력 감축으로 인한 전력공백을 메울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이 예비전력 강화이기 때문이다. ‘국방개혁 2.0’에 따라 2018년 이후 5년간 줄어들 병력은 11만8000명에 달한다. 이를 통해 한국군 총병력은 오는 2022년 50만명으로 줄어든다. 벌써 56만명 수준으로 감축된 상태다. 감축되는 병력은 모두 육군이다. 5년간 매년 2만3600명이 감축, 매년 2.3개 사단이 없어지는 셈이다. 군단도 8개에서 6개로 줄어든다. 지난해 말까지 최정예 기계화 부대인 육군 20사단 등 일부 사단이 통폐합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전력공백 논란도 불거졌다.
육군은 병력 감축 외에 설상가상으로 복무기간 단축(3개월), 대체복무제 도입까지 보태지면서 이른바 ‘3중 쓰나미’에 휩쓸려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정규군 및 예비군, 훨씬 긴 복무기간을 갖고 있는 북한군과 대비돼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128만명의 정규군 외에 650만명에 달하는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 육군의 복무기간은 18개월로 줄어든 상태지만 북한군의 복무기간은 10년에 달한다. 숙련도 등에서 우리가 열세일 수밖에 없다.
국방부의 전력공백 보완 대책은 부사관·군무원 등 직업군인 확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직업군인 확충은 부사관 모집에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군무원은 야전 전투력 강화와는 거리가 있어 한계가 있다. 결국 예비전력 강화가 가장 중요한 병력 감축의 전력공백 보완 대책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안규백 의원의 지적대로 현실은 이런 목표와는 너무 괴리가 크다. 노후장비들 때문에 예비군은 제대로 효과적인 훈련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포병, 기갑 분야가 그렇다. 과거 포병은 차로 끌고 다니는 견인포를 주로 썼지만 지금은 현역 시절 K-55, K-9 등 자주포를 사용한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나 현재 예비군엔 자주포가 없어 구형 105㎜ 또는 155㎜ 견인포를 운용하고 있다. 현역 시절 최신형 K-9 자주포를 운용했던 예비군이 한 번도 다뤄보지 않았던 구형 견인포를 실전에서 얼마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는 불문가지다. 전차도 현재 동원사단 전차는 20~30년 이상 된 M48 계열이다. 현재 육군 및 해병대 일부 부대에서 M48 계열 전차를 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K-1, K-2 전차를 운용한다. 현역 시절 K-1, K-2 전차를 운용했던 예비군이 M48 계열 전차를 제대로 쓰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스라엘 등 예비군 선진국 벤치마킹해야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 군도 이스라엘, 미국, 싱가포르 등 이른바 예비군 선진국들을 벤치마킹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우리 예비군과는 차원과 성격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7월 이스라엘군이 무장투쟁 단체인 하마스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개시했는데 당시 긴급 소집된 예비군은 약 4만명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경계근무 등 후방 지원에 그치지 않았다. 하마스의 땅굴과 무기 은닉 장소 색출부터 관련 시설 공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작전에 투입됐다. 특히 땅굴을 찾아내 파괴하는 작전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우려가 컸지만 예비군도 이 작전에 투입됐다.
이처럼 이스라엘 예비군은 정규군(상비군)과 다름없고 실전 경험 면에선 정규군보다 앞서는 존재다. 아랍권에 비해 절대적인 인구 열세에 있었던 이스라엘은 예비군을 강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1973년 4차 중동전 때 이스라엘군 병력은 현역과 예비군을 모두 합쳐 41만명이었다. 아랍 연합군(100만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뒤 이스라엘은 예비전력 강화에 주력한 결과 현역(17만명)의 두 배가 넘는 46만명의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다. 연간 동원훈련 기간도 우리 동원훈련 기간(2박3일)의 10배가 넘는 38일에 달한다.
우리와 같은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없는 싱가포르도 상비군(7만명)의 4.5배에 달하는 예비군(31만명)을 유지하고 있다. 예비군 복무기간은 상비군의 5배(10년)에 달한다. 연간 40일 동안 강도 높은 동원훈련을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금전적 보상과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한다. 우리보다 적은 87만명의 예비군을 운용하는 미국은 국방비의 9%(520억달러, 2018년 기준)를 예비군 예산으로 할당했다. 군 소식통은 “이제 예비전력 강화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 없다면 대규모 병력 감축 등에 따른 안보 공백은 ‘발등의 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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