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실존하지 않는 인물 명의로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는 서명부를 대량으로 작성했더라도 형법상 사문서위조나 위조사문서행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명부의 취지가 정치적 지지 의사를 집단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지, 권리·의무나 중요한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부분을 무죄로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 4일 확정했다.
국민의 힘 당원인 A씨는 같은 당원들과 함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2년 2월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선언 형식의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1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실제는 16명의 서명만 받을 뿐 별다른 성과가 없자, A씨는 315명의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 명의로 서명부 21장을 임의로 작성한 뒤 다른 당원에게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게 적용된 3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공직선거법은 제107조에서 ‘누구든지 선거운동을 위해 선거구민으로부터 서명이나 날인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1심 재판부는 16명의 지지 성명을 받은 것 자체가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보고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의 경우 A씨는 “형법상 문서에 관한 죄에서 사실증명에 관한 문서가 아니라 의견이나 호소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문서에 해당한다”고 못 박고 이 혐의에 대해서도 벌금 100만원을 명령했다.
2심은 공직선거법위반 혐의에 대해선 A씨 항소를 기각했으나 나머지 혐의는 “서명부 21장은 형법상 사문서위조의 객체가 되는 ‘문서’라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의 점을 유죄로 인정한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으므로 A의 주장은 이유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단 역시 같았다. 대법원은 “사문서위조의 객체인 사문서는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문서 등을 가리키고, ‘권리·의무에 관한 문서’는 권리 또는 의무의 발생·변경·소멸에 관한 사항이 기재된 것을 말하며, ‘사실증명에 관한 문서’는 권리·의무에 관한 문서 이외의 문서로서 거래상 중요한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를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서명부 21장은 주된 취지가 특정한 대통령후보자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 의사를 집단적 형태로 표현하고자 한 것일 뿐, 실체법 또는 절차법에서 정한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관한 문서 내지 거래상 중요한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당초 목표했던 1만명의 서명 달성이 어렵게 되자 목표한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았고, 서명부를 이용해 특정 후보자 지지선언 기자회견 외에 다른 목적의 행사를 계획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형법상 사문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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