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법대가 그리 높은지 몰랐다. 2024년 변호사 등록을 하기 전까지 변호사로 법정에 서 본 적은 없었고 사법연수원 시절 국선변호인으로 단 1회 형사재판에 입정해 본 것이 전부인 필자는 변호사로 첫발을 내딛는 첫 재판에서 나름 혹독한 신고식을 치루었다. 필자는 이혼 사건의 피고를 대리하고 있었는데 당시 재판장이 사전처분으로 면접교섭의 방법을 정하려 하였다. 그래서 재판장이 말을 마친 후 발언 기회를 얻어 의뢰인이 원하는 면접교섭의 방식과 시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재판장은 내 말을 중간에 끊더니 “변호사님, 가사 재판 처음 해보세요?”라고 묻는 것이다. 재판장의 진행을 방해한 것도 아니고 발언 기회를 얻어 대리인의 의견을 진술한 것일 뿐인데 변호사로 난생 처음 입정한 법정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받으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순간적으로 ‘내가 진짜 가사 재판을 처음 해보는 것인지 궁금해서 위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은 아닌가’라고도 생각해 보았으나 당시 재판장의 눈빛은 무언가 궁금해하는 눈빛이 아니라 매섭고 싸늘한 것이어서 위와 같은 질문을 변론과 전혀 관계없이 대리인을 무안주려는 행위로 본능적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속으로 “제가 재판장님보다 가사 재판 경험이 훨씬 많을텐데요. 면접교섭의 방법을 정하는 것과 상관없는 이런 질문을 갑자기 왜 하시는 것인지요?”라고 되묻고 싶었으나 의뢰인에게 불이익한 처분이 나올까봐 꾸욱 참고 “처음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재판장을 부드럽게 응시하였다. 그러자 그 재판장은 나를 한참 노려보더니 내겐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내용인 ‘양육권과 면접교섭의 일반론’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법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가사재판을 꽤 오래했고, 2024년 퇴임 시까지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가사재판을 해왔던 사람이다.
재판을 마친 후 함께 출정했던 동료 변호사에게 위와 같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자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동료 변호사는 그 정도 면박은 변호사 하다보면 별로 큰일도 아니니 얼른 훌훌 털어내고 앞으로 변호사로서의 맷집을 더 키워야한다고 나에게 조언하였다. 나중에 그 재판장에 대해 탐문하여 보니 여기저기서 그 재판장으로부터 더 심한 피해를 입은 변호사들의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필자와 같이 재판 경험이 많은 변호사도 이러할진대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변호사들은 그 재판장으로부터 면박을 받고 나서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위와 같은 첫 신고식 이후 변호사로서 1년을 지내면서 여러 법정을 드나들다 보니 그 첫 재판 때의 재판장이 유독 고약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대다수의 법관들은 그래도 품위를 지키며 온화한 태도로 합리적인 재판 진행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대 아래에서 보는 법대가 여전히 높긴 하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꼭 채택되어야 할 증거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히 항소심에선 더욱 그러하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입증 목적을 기재한 증거신청이 여러 번 기각되면서 나도 재판장이었을 때 대리인들의 증거신청을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고 받아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나 후회도 하였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재판은 법정이라는 곳에서 재판 당사자가 어떠한 주장을 하고, 재판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린다면 증거를 통해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사실 확정 단계)을 거친 후 확정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법령과 판례를 적용하여 그에 맡는 결론(판결, 결정 및 심판 등)을 내는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과정이지만 하나의 사건 안에서도 확정되어야 할 수많은 사실관계가 있고, 그 사실관계를 증명할(또는 탄핵할)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면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해진다. 더구나 확정된 사실관계에 대해 적용할 법리에 대해서까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공방이 생긴다면 그 재판 절차는 더욱 길어질 것이다. 그 복잡하고 기나긴 과정을 하나하나 품위 있게 풀어나가는 것이 재판장의 역할이다. 재판을 진행함에 있어 재판 당사자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어떤 증거가 제출되었는지 등은 당연히 재판에 앞서 재판장이 숙지하고 있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와 같은 재판 준비만으로는 좋은 재판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무리 기록을 잘 숙지하고 있어도 재판 당사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재판장은 미숙한 재판장이 될 수 밖에 없다. 작은 일례로 법대에서 마이크 사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재판 당사자는 재판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또한 재판장이 말이 너무 빠르게 하거나 우물우물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나아가 재판장이 마이크 사용을 제대로 하더라도 재판 당사자들과 눈을 맞추지 않은 채 기록만 보면서 재판을 진행한다면 재판 당사자들의 절차적 만족감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재판장은 재판 기록의 숙지 못지않게 소통 기술에 대한 훈련도 해야 한다. 재판 당사자들에게 자신의 의사가 명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호흡과 발성 및 자연스런 눈 맞춤까지 연습할 필요가 있다. 그냥 본인이 편한대로 습관대로만 진행하다보면 재판 절차 진행은 점점 더 부자연스럽게 변할 것이다.
필자는 법관으로 재직할 당시 이러한 소통 기술 강화를 위해 재판 절차를 녹화해서 스스로 모니터링하기도 했고, 다른 동료 재판장들에게 녹화 영상을 보여주면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으며, 나아가 전문적인 커뮤니케이션학 전공자로부터 코칭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 재판 진행 중 기록을 필요 이상으로 자주 보는 습관과 재판 당사자의 발언 시 눈맞춤 시간이 너무 짧았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사무실에서 거울을 보며 혼자 재판 진행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또한 근무했던 어느 법원에서는 법관들이 각 재판장의 재판 진행 영상(재판 당사자들은 나오지 않고 재판장만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투표를 통해 시선 처리, 발성 및 질서 유지 등에서 가장 탁월한 재판장을 모범 사례로 선정하고 그 재판장의 영상을 보며 재판 진행 스킬을 연마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재판 역량 강화를 위해 일정 경력의 재판장들에게 주기적으로 전문가 멘토를 섭외하여 매칭시켜 주기도 하였다. 법관 근무 당시 필자도 항상 다른 재판장의 재판 진행을 보면서 본받을 점은 찾아 배웠고, 전문가 멘토의 멘토링을 들으며 부족한 점은 고쳐나간 바 있다.
사법부 대부분의 재판장들이 소통 기술 강화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변호사로 나와 보니 재판 당사자나 대리인에게 막말을 하거나 직접적인 모욕을 가하는 재판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만 내가 변호사로서 첫 재판 때 경험한 것처럼 당사자나 대리인에게 은근한 면박을 주는 재판장은 아직도 더러 있다. 재판장의 권위는 싸늘한 눈빛으로 대리인이나 당사자를 내리누르는 방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법정은 소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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