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집에서 잠깐 낮잠 자고 일어났는데 소중한 아들이 사라진다는 심정이 어떨까. 정희택군( 사진)의 어머니는 이에 대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며 "피가 마르고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다"고 토로했다. 어머니는 고작 세살배기였던 희택이(만 2세)를 1984년 9월 12일 잃어버렸기 때문에 누구보다 심정을 잘 이해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희택이의 실종이 자기 잘못인 양 힘들어했다.
당시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에 살았던 희택이 가족은 여행을 갈 예정이었다고 했다. 목적지는 경기도 가평이었다. 여행을 예정했던 날이 됐는데 그날따라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았다. 결국 어린 희택이와 어머니는 집에 남게 됐고 희택이 아버지, 형, 누나만이 계획대로 여행을 떠났다.
집에 남게 된 어머니는 오전 10시께 배고파하는 희택이에게 밥을 먹였다. 이후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낮잠을 잤다. 잠시 감았던 눈을 떠보니 시계는 정각 오후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켜 아들을 찾았는데 희택이가 집에 없었다. 처음 어머니는 희택이가 평소처럼 집 앞마당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살배기였지만 종종 앞마당에서 놀고 들어오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날 희택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희택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하고 집 인근을 샅샅이 찾아다녔지만 희택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작은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이웃들에게 물어보고 다녔지만 목격한 사람이 없었다. 감쪽같이 희택이가 사라진 것이다.
찾아도 없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모든 일도 제쳐두고 희택이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전단지도 뿌리고 방송에 출연해 하소연했고 시설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전국 곳곳을 다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오히려 거짓 제보를 하면서 돈을 요구하거나 희택이를 데리고 있으니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번은 강원도에서 한 제보자가 희택이를 봤다면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희택이 부모를 보고 확인하고 싶다고 해서 청량리역에서 만나기를 요청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청량리에서 만나게 된 제보자는 희택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보더니 "아닌 것 같다"면서 돌아가 버렸다. 따라가서 붙잡고 다시 확인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제보자가 본 아이가 희택이가 맞으면 해코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따라가지도, 붙잡지도 못했다.
희택이가 실종된 지 4년이 지난 1988년에는 또 다른 불행이 가족을 찾아왔다. 누구보다 아들을 찾기 위해 적극적이었던 희택이 아버지가 서울 영등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됐다. 아들에 이어 남편까지 잃은 희택이 어머니는 충격에 병이 생겨 눕고 말았다.
남편의 교통사고 이후 희택이 찾기와 남은 가족의 생계는 고스란히 희택이 어머니의 몫이 됐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직 희택이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유전자 등록하고 제보도 기다리고 있지만 소식은 없다고 한다.
희택이 어머니는 "어렸지만 너무 예쁘고 똑똑했던 아들이다. 품 안에서 키우지 못한 것이 너무나 한이 된다"며 "건강하게 자란 희택이가 지금이라도 부모를 찾았으면 좋겠다. 살아생전에 희택이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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