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이 발굴현장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조사내용과 향후 방향 등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진실화해위
"못 찾아줘서 미안해. 이제 편히 쉬어. 네가 없어도 나는 자주 올 거야. 나 이제 네 생각 덜 하니까..." 선감학원 피해자 이 모 씨는 경기도 안산 선감도 암매장지에서 구덩이를 어루만지면서 오열했다.
25일 2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선감학원 유해 발굴 현장의 설명회 자리에서다. 이 씨는 1970년 10살 때부터 선감학원에 5년간 수용됐던 피해자다. 이 씨는 이날 구덩이에서 나온 쇠붙이를 보자마자 50년 전 친구가 쓰던 물건인 것을 확신하곤 눈물을 흘렸다.
안산 선감학원 유해 발굴 현장/사진=진실화해위
굶주릴 때 바닷가에서 주운 굴을 까먹기 위해서 쇠를 갈아 만든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밤마다 내가 괴롭힘과 구타를 당하는 것을 알고 '내가 너네 집에 가서 부모님 데려올게'라며 탈출했던 친구가 3일 뒤에 죽은 채로 바다에 떠밀려 왔다. 그 친구를 내가 묻어줬는데 너무 어려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9월 21일부터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분묘 40여기를 2차 시범 발굴한 결과 당시에 원생이었던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 210개와 단추 등의 유품 27개를 수습했다고 전했다.
1970년대 선감학원 아이들/사진=국가인권위원회
"선감학원의 아동을 집단 암매장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1982년까지 대규모 아동 인권 유린이 자행됐던 선감학원 근처의 암매장지로 탈출을 하려다 익사했거나 영양실조로 죽은 아이들이 묻힌 곳이다.
암매장 이후에 최소 40년이 흘러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동의 허리띠로 추정된 16인치 직물 끈들과 굴을 까먹을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쇠붙이 등이 발견됐다.
시범 발굴을 맡은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원장은 "약 2400제곱미터 면적의 이 산에 유해가 최소 150여 구가 묻혔던 것으로 추정된다. 치아 유해를 감식한 결과 12세~15세의 나이에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장 분묘의 모습/사진=진실화해위
이번 시범 발굴된 분묘 대부분은 길이가 110cm~150cm 깊이 50cm 미만이었다. 가장 작은 92호 분묘의 길이는 85cm에 불과했다. 그는 가매장 형태로 몸집이 작은 아동들이 땅에 묻힌 증거라고 설명하며 "꿈을 키워갈 시기에 무엇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삶은 여기서 멈췄을까"라고 되뇌었다.
진실화해위는 시범 발굴 결과를 반영해 12월에 2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경기도 전면적 발굴을 권고할 계획이다. 김진희 진실화해위 조사관은 "2차 진실규명 때 왜 아동들이 선감도에서 목숨을 걸어서까지 탈출을 했었는지, 누가 암매장을 명령하고 지휘했는지 책임자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에서 본 선감학원 공동묘지 위치/사진=한국선사문화연구원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태평양전쟁 전사를 확보하겠다는 명목으로 설립했던 아동 강제수용소이다. 해방 이후에도 1982년도까지 경기도가 운영해 왔다. 명분은 부랑아 교화였다. 하지만 선감학원 원생들은 폭력, 인권 침해를 당하고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다수가 영양실조와 구타로 사망했으며 섬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원생 834명 중에 상당수는 바다에 빠져 사망했다. 피해자들은 아직 그때의 고통에 시달린다.
선감학원 유해 발굴 현장에서 공개된 치아와 단추 등 유품/사진=진실화해위
피해자 이 씨는 "탈출은 1972년에 시도했다가 발각되면서 일주일간 물도 마시지 못하고 해도 안 들어오는 창고에 갇혀 있었다. 너무 어려 어둠 속에 갇힌 기억 때문에 아직도 불을 끄고 잠을 못 잔다. 대변도 보지 못해서 장갑을 가지고 다니면서 변을 파내는 고통 속에 산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저는 부랑아가 아니었기에 나라가 잘못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사과를 받으면 마음 한켠의 응어리가 풀릴 것 같다"며 흐느꼈다.
2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발굴 작업은 여기서 끝이 난다. 진실화해위가 한시적인 기구이기 때문이다. 발굴 작업에 대한 권한은 정부와 경기도에 남아있지만 진실화해위는 행정안전부와 경기도가 유해 발굴 권고를 1년이 지나도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기도는 유해 발굴은 국가에서 주도하는 게 타당하다고 사업 불참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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