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이 시릴 정도의 날씨였던 1993년 12월 12일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현재 부여 왕릉원) 주변의 한 절터에서는 오후가 지나도록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진흙 속에 파묻혀 있던 유물을 발굴하기 위해 현장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어둠을 꿰뚫고 섬세한 손길로 조각을 걷어내고 흙을 파내자 이윽고 뚜껑과 몸체가 분리된 향로가 나타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여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제 금동대향로/사진=국립부여박물관
무려 1천 400년간의 긴 잠을 깨고 모습을 나타낸 61.8cm의 백제 역사였다. 백제 문화의 정수이자 당대 백제 예술혼이 집약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가 발굴 30주년을 맞이해 특별한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과 마주하게 된다.
국립부여박물관은 9월 23일부터 '백제 금동대향로 3.0, 향을 사르다' 특별전을 관객 앞에 선보일 예정이다. 백제 금동대향로가 세상에 드러난 지 3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해 그동안의 연구 및 조사 결과를 밝히고 백제의 향로와 예술적인 향(香) 문화를 정리한 자료 및 유물 32점을 알리는 전시회다.
이번 전시는 향과 향 그 자체 문화에 주목해 재해석하고자 했다./사진=국립부여박물관
20일 신나현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향로가 가진 독창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향과 향 그 자체 문화에 주목해 재해석하고자 했다"라고 전시 기획 주체를 밝혔다.
전시는 '백제 대표 보물'로 일컬어지는 백제 금동대향로로 시작된다. 높이 61.8cm, 무게 11.8kg 향로와 이를 부드럽게 감싸고 휘도는 연기가 3차원(3D) 영상으로 재구현될 예정이다. 뚜껑에 섬세하게 조각된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신비로운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유물에 집중하기 위해 조명도 최소한만 밝혔다./사진=국립부여박물관 유튜브 캡쳐
도입부를 지나 마주하는 감각적인 공간의 주인공은 단연 금동대항로다. 30년 전 세상에 드러난 금동대향로가 출토됐던 타원형 아궁이를 그대로 갖다 놓은 듯한 원형 공간 속에서 오로지 금동대향로만이 몽환적인 빛을 발한다. 오직 유물에 주목하기 위해 조명도 최소한으로만 밝혔다.
동선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감각적인 전시장은 오로지 향로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뚜껑에 그려진 5명의 악사와 사슴,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과 바위, 나무, 여러 겹으로 첩첩산중을 형상화한 높은 산 등의 문양은 무인 정보 단말기(키오스크)를 통해 확대해 볼 수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뚜껑의 모습/사진=국립부여박물관 유튜브 캡쳐
신나현 학예연구사는 "향로의 연꽃잎, 산봉우리 등에는 86개의 얼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백제인이 꿈꾼 이상세계의 평온함과 생동감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용 뿔에 남겨진 절단 흔적과 조그만 연기 구멍에 남겨진 도금의 흔적 등 항로의 자세한 제작 과정도 소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백제시대의 또 다른 향로는 가히 눈여겨볼 만하다.
손잡이까지 달린 향로는 최초로 발견했을 당시 뒤집혀 있어 토기 받침으로 분류돼 수년간 부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보관 중이던 소장품들을 꺼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뜻밖의 성과를 관객들과 나눌 예정이다.
향꽂이/사진=국립부여박물관
또한 앞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향꽂이, 경북 군위 인각사 발굴 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손잡이 향로와 향합(香盒) 등도 함께 전시된다.
박물관은 "6세기 중반 향은 상처받은 백제인의 아픔을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심어줬을 것. 금동대향로가 건네는 치유의 향이 전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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